"저희 진~짜 남는 거 없어요. 거의 원가에 드리는 거예요!"
상점 사장님들의 절박한 목소리, 상품 상세페이지에 대문짝만하게 쓰인 문장.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물건을 사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말입니다.
저 역시 으레 하는 상술이라 생각했지만, 때로는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손님을 끌기 위한 미끼 상품이거나, 재고를 떨어내야 할 때 말이죠.
얼마 전 오후 5시 쯤 매장에 들어서자 파트타임 직원의 표정이 잿빛이었습니다.
"오늘 15만 원 팔았어요. 죄송합니다."
주말이면 150만 원까지 내달리던 곳이라 그 말의 무게가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15만 원.
쇼핑몰 수수료에 인건비만 겨우 덮는 수준.
나머지는 고스란히 손실로 남는 상황이었습니다.
"괜찮아요! 아직 마감까지 5시간이나 남았잖아요. 오늘 딱 50만 원만 찍어봅시다!"
일부러 더 힘차게 앞치마를 두르며 소리쳤지만, 칼같이 끊어지는 평일 저녁의 유동인구를 알기에 저조차 기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쇼케이스를 가득 채운 100개 가까운 빵들이 마치 시한폭탄처럼 느껴졌습니다.
유통기한을 고려하면 길어야 내일 오전까지가 한계.
잠시 후 6시면 저녁 식사를 전후로 한두 시간 반짝 손님이 늘어날 겁니다.
승부는 그때 봐야 했습니다.
약간의 할인을 결심했습니다.
"20% 할인 시작합니다! 맛있는 빵 가져가세요!"
직원과 함께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저희의 외침은 텅 빈 쇼핑몰에 허무하게 흡수될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걸음은 무심하게 저희 매대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직원이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어제도 마감 때 20% 세일했거든요. 그래서... 크게 와닿지 않는 것 같아요"
양손에 빵을 하나씩 들고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어제의 전략은 오늘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습니다.
"...1+1 갑시다"
"네? 그럼 정말 손해 아니에요?"
"손해까진 아니고, 팔 때마다 500원씩 남겠네요. 하지만 내일 아침 이 빵들을 전부 폐기하는 비용과 기회를 생각하면, 오늘 0원이라도 좋으니 다 털어버리는 게 이득이에요"
마침 6시가 되자 거짓말처럼 매장 앞이 조금씩 북적이기 시작했습니다.
직원이 먼저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하나 사면 하나 더! 1+1 세일합니다!"
"좋아요! 그 앞에 '마감' 꼭 붙여줘요!"
"1+1 마감 세일합니다!!"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방금까지 눈길조차 주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두 개 주시는 거예요?"
"이러면 남는 거 있으세요? 하나 살게요."
"우리 사서 하나씩 나눠 가질까?"
한 사람이 사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이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작은 줄이 또 다른 줄을 만들었습니다.
마진을 포기하자, 한 시간 만에 빵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습니다.
7시가 지나자 인파가 조금씩 줄었습니다.
여기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야 했습니다.
"남은 빵 쇼케이스에서 다 꺼내주세요. 몇 개만 빼고"
매대 위에 일부러 딱 3세트만 단출하게 깔아놓고 다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1 마감 세일! 이제 수량 얼마 안 남았습니다! "
'곧 마감될 것'이라는 희소성의 가치는 할인율보다 강력했습니다.
그 소리에 행인들이 반사적으로 매장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곧 다 팔리고 없을 것 같다는 조바심이 그들의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빵을 꺼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갔습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직원의 신난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지금까지 매출 55만 원이에요!"
다음 일정을 위해 급히 매장을 나선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8시 반쯤, 직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쇼핑몰 매니저님이 내일 오픈 때 진열할 상품은 있어야 한다고, 조금만 남겨두라 하셔서 완판은 못 했어요. 그래도 정말 딱 몇 개만 남고 다 팔렸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직원의 들뜬 목소리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정산해보니 그날 손에 쥔 이익은 5만 원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진짜 수익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패배감에 젖어있던 직원의 얼굴에 되찾아준 활기, 전량 폐기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낸 전략의 승리, 그리고 텅 빈 쇼케이스가 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충만감이었습니다.
때로는 남는 것 없이 모든 것을 파는 날이, 가장 많이 남는 날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