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취향을 모른다!
초개인화 시대의 홈쇼핑

by 지크

유튜브에 들어갔더니 예전에 본 영상들을 토대로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들이 주르륵 뜹니다. 넷플릭스에 들어갔더니 자주 보는 드라마를 분석해서 내가 좋아할 만한 드라마들을 추천해줍니다. 포털에 들어갔더니 내가 봤던 뉴스나 게시물을 고려해서 뉴스나 읽을거리를 추천해줍니다. 요즘은 어쩌면 모든 회사들이 어떻게 하면 개인들의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화'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홈쇼핑도 이 흐름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현재 대다수의 홈쇼핑 회사들이 소비자들에게 개인 맞춤형 상품과 방송을 제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입니다.


홈쇼핑 앱에 들어갔는데 마침 내가 사고 싶은 상품이 딱 뜨고 상품에 대해 궁금했던 점만 정보가 딱 제공이 되며 이해가 안 되는 점만 쉽게 설명한 영상으로 딱 제공이 돼서 이것저것 검색하거나 고민할 필요 없이 구매할 수 있는 그런 방식.
시간대별로 고객을 분석해서 그 시간에 주로 시청하는 고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품을 편성하고, 시청하는 고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으로 상품을 설명하는 그런 홈쇼핑 방송.


이를 위해 홈쇼핑에서는 상품별 혹은 고객별로 속성을 세밀하게 분류하고 그 속성 값을 적절히 조합하여 인공지능을 통해 개개인에게 맞춤형 상품 및 방송을 제공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계획 정도가 아니라 미래의 핵심 성장 동력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회사의 방향에 따라야 하는 일개 조직원인 저이지만 이번만큼은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사람들의 취향이라는 것이 그렇게 몇 번의 행동만으로 예측되는 간단한 것이라면 세상의 수많은 회사나 사람들이 사람을 대함에 있어 고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 기분도 어제와 오늘이 다른데 다른 사람의 취향을 대번에 알아차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저는 유튜브를 일부러 로그인을 하지 않은 채 봅니다. 뭐 하나 보고 나면 관련 영상들이 줄줄이 추천 영상으로 뜨는 바람에 차라리 로그인을 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 단지 임영웅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노래 영상이 보고 싶어 시청을 했는데 아직까지도 미스터 트로트 영상뿐 아니라 온갖 트로트 영상들이 추천돼서 삭제하는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제 취향은 아니지만 취향이겠거니 생각하는 유튜브의 개인화 서비스 때문입니다. 또 넷플릭스 가입 후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좀비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봤더니 온갖 좀비 컨텐츠가 추천되는 바람에 한동안 앱에 들어가자마자 좀비 썸네일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이렇게 즐기려고 소비하는 영상 컨텐츠 추천도 맞지 않을 때가 있는데 돈과 직결되는 소비에 있어서는 더 복잡해지는 소비자들의 취향이나 생각을 홈쇼핑이 그리고 인공지능이 근 시일내에 딱 맞출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냥 필수품인 세제가 떨어져서 홈쇼핑 방송을 보고 몇 년 치 세제를 구입했는데 계속 추천 상품으로 세제가 뜬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개인화의 작은 일환으로 현재 홈쇼핑에서 연관 상품이라는 것을 추천하고는 있습니다. 쌀을 구입하는 고객들이 반찬도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반찬 상품을 추천하거나 칫솔을 구입하는 고객들에게 치약도 추천하는 식입니다. 물론 데이터에 근거한 추천이 아닌 홈쇼핑 회사들의 추측만으로 이루어진 추천 시스템이라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추천을 통한 개인화 서비스가 정교하게 가능할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근본적으로 개인화 서비스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나의 하루는 알람으로 시작되지. 모든 것은 계획대로. 알람은 정확하니깐.
기상 알람에 눈을 뜨고, 샤워 알람에 몸을 씻고, 출근 알람에 집을 나서지.
12시 15분 알람이 울리면 난 편의점으로 들어가네"

-주제곡 ''플랜맨' 중


'플랜맨'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철저히 계획적으로 살던 한 남자가 무계획 인생에 도전하며 지금껏 알지 못하던 인생의 재미를 찾는 내용입니다.


개인화와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변수 없는 컨텐츠와 상품만이 계획적으로 제공된다면 취향과는 너무 다르지만 우연히 발견한 영화와 드라마를 너무나 재미있게 보며 숨겨진 보물을 찾는 짜릿함도, 전혀 구매 계획이 없었지만 갑작스레 지름신이라는 핑계로 질러본 상품이 집에 도착했을 때의 소소한 즐거움 같은 것들은 이제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언뜻 들으면 좋아 보이는 '개인화 서비스'라는 것이 가끔은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내 취향에 맞는 것만 골라서 보고 골라서 사게 되는 세상이 정말 오게 되면 내 취향과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쳐지고 다양성이라는 소중한 의미가 퇴색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개인화로 나름의 성공을 거둔 만큼 홈쇼핑을 비롯한 유통업계에도 개인화의 바람은 분명히 불 것입니다. 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앞에서 소비자뿐만 아니라 판매자 입장에서도 상품과 컨텐츠의 다양성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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