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 사기꾼이라는 말을 들었다

by 지크

"에라이 사기꾼아!!"


밤새 꺼두었던 핸드폰 전원을 켜자 난데없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지인의 장난인 듯 장난 아니 듯한 말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보내준 링크를 클릭하니 최근 혈관 청소 등으로 인기를 끌던 건강식품인 크릴 오일 일부 상품에서 항산화제와 추출용매가 기준치를 초과해서 식약처가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는 뉴스 기사가 나왔습니다.


반년 전쯤 나는 크릴 오일 상품 방송을 진행하면서 오메가 3를 비롯해 인지질, 비타민 등이 풍부하면서도 수은 중독 걱정이 없는 점에 매료되어 구매한 뒤 지금까지도 일주일에 서너 알씩을 복용하던 중이었습니다. 주변 지인 몇몇에게도 추천을 했는데 한 지인이 뉴스 기사를 보고 저에게 연락을 해온 것입니다.


협력사에게도 연락을 해보니 본인들 상품은 부적합 상품 리스트도 아니고 부적합 판정이 인체에 유해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푸념까지 합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인에게 연락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래도 괜히 추천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지인 역시 진심은 아니었다며 웃음으로 통화는 마무리되었지만 다소 정신없는 아침을 보낸 탓에 지금도 개운치 못합니다.


홈쇼핑에서 판매되는 건강식품이 나쁜 쪽으로 이슈가 될때마다 나는 예전 가짜 백수오 사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백수오가 홈쇼핑을 점령하다시피 했던 그때 저는 입사 후 겨우 적응을 해나가던 햇병아리였고 엄마는 갱년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무심한 성격과 떨어져 산다는 상황이 겹쳐 엄마가 여성들에게 가장 힘든 관문 중 하나인 갱년기를 지나고 있었음에도 저는 마치 남일 인양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백수오 상품 방송을 하게 되었고 협력사와의 회의 도중 갱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미지의 세계였던 갱년기에 대한 설명을 한 시간 넘게 듣고 나서야 저는 엄마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백수오를 한 상자 구입했습니다.


백수오를 선물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릴 만큼의 시간이 흘렀을 때 걸려온 엄마의 전화 한 통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평소 건강식품의 불필요성과 불신을 주장하며 필요 없다는 말만 반복하던 엄마였는데 , 건강식품을 먹을 바에야 좋은 음식을 먹겠다고 말하던 엄마였는데, 전화 통화 내내 백수오를 먹고 본인의 갱년기 증상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이야기하고, 백수오가 참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의 무관심에 대한 보상과 일생에 몇 번 없었던 효도 찬스라 생각한 저는 한동안 백수오를 꾸준히 집으로 보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짜 백수오 사태가 터졌고 전에 없던 큰 사건에 수없이 많은 고객 응대와 환불을 진행하면서도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가짜 백수오를 먹은 엄마의 갱년기 증상은 대체 어떻게 좋아진 것일까'


엄마는 10년이 지난 그때의 일을 지금 물어보면 '내가 그랬었나..' 하며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운 좋게 진짜 백수오였던 걸까. 혹시 플라세보 효과였을까, 아니면 오랜만의 아들 효도에 기분 좋아진 엄마의 인사치레였을까.


물론 당시에도 엄마의 열렬한 반응에 힘입어 주변 지인들에게 백수오를 추천했고 사건이 터진 후 많은 지인들에게 사과하느라 애 먹은 기억이 납니다. 이럴 때마다 홈쇼핑 종사자로서 속상하지만 별수 없습니다. 어떤 핑계도 없이 그냥 홈쇼핑을 믿고 구매해준 고객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보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가짜 백수오도, 개운치 못한 크릴 오일도 어쨌든 우리가 좋다면서 팔던 상품들이 아닌가. 지인의 장난 어린 사기꾼 발언에 뜨끔 하는 건 홈쇼핑 PD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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