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옛날 홈쇼핑이 그립다.

by 지크

*철저히 홈쇼핑 종사자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홈쇼핑에 비판적인 분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글이 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홈쇼핑 회사들은 사회에서 자신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가장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생방송일 것이다. 생방송을 통해 여과 없이 나간 한 번의 실수로 수많은 고객들의 컴플레인과 방통위의 징계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에 요즘은 이 생방송이 어떤 경우에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온갖 장치를 해둔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쇼호스트가 신뢰감 있는 말투로 상품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고객의 선택을 기다린다. 생방송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심의 담당자는 혹시나 방송에 문제는 없는지 계속 체크를 하고 심의 의견을 내보낸다. 추후 방송 심의에 문제가 생기면 엄청난 불이익이 있기에 PD와 쇼호스트는 심의 담당자의 의견을 계속 모니터링하며 '정정해드립니다!'를 반복한다. 방송이 끝나면 매출보다는 방송 중에 심의 이슈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체크하는 것이 우선이다. 매출은 부진했지만 심의적으로 문제 된 것이 없다는 사실에 PD와 쇼호스트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물론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고 교양 있게 방송하는 것도 좋다. 요즘 홈쇼핑 회사들의 뼈를 깎는 자정 노력으로 과대 및 허위 광고나 비방, 고객 기만적 요소들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그만큼 홈쇼핑 방송 특유의 재미마저 사라지고 있다.


홈쇼핑 방송의 시그니처이자 방송의 재미였던 흥겨운 노래와 함께 고객의 주문을 독려하는 성우의 멘트도(지금은 고객의 충동적인 주문을 유도할 수 있다며 금지되었다), 제품의 특성을 극대화한 영상도(1000번 중 1번이라도 그렇게 구현이 안될 확률이 있으면 사용이 금지되었다), 상품을 직접 써본 쇼호스트의 생생한 후기도(판매자의 개인적인 평가를 방송에 활용할 수 없다며 금지당했다), 판매 상황을 실시간으로 방송에 노출하는 PD의 순발력도(역시나 고객의 충동적인 주문을 유도할 수 있다며 활용이 제한되었다), 매진이 예상됨을 숨 가쁘게 전달하던 안내 자막도(역시나 역시나 고객의 충동적인 주문을 유도할 수 있다며 활용이 제한되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방송의 포맷뿐만이 아니라 상품도 이런 강화된 자정노력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고객들이 조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상품들은 모조리 사라졌다. 참신하거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하지만 고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그런 상품들은 밀려나고 잘 알려진 브랜드에 고객들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상품들만이 몇 번이고 반복해서 편성이 되고 방송이 된다. 회의 때 이게 대체 무슨 상품이냐며 탄성이 내지르던 PD와 쇼호스트의 모습 역시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심의적 요소가 아니더라도 쇼호스트의 우스꽝스러운 복장, 센스 있는 패러디, 특이한 소품, 독특한 세트장 역시 방송의 품격을 해친다는 이유로 금지되고 있다. 요즘은 비슷한 복장의 쇼호스트들이 무미건조하게 늘 보던 세트장에서 상품을 팔고 있다.


고객들에게 방송의 장치 없이 오직 상품의 매력만으로 평가받겠다는 점은 이해한다. 문제는 그런 선의가 단 1%의 문제 여지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결벽증으로 변질되어 상품 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그저 말로 옮기는 그런 재미없는 방송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가끔은 예전처럼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면 목소리도 높여보고 싶고 매진이 될 것 같으면 긴박한 효과음과 함께 고객들의 주문을 독려하고 싶다. 상품을 누구보다 연구하고 써보며 고민하는 쇼호스트의 생생한 이야기도 풀어보고 싶다. 현재 핫한 주제를 패러디하거나 쇼호스트의 예상치 못한 멘트로 스튜디오도 한 번쯤은 웃음바다로 만들고 싶다.


고객들을 속여가며 방송을 하고 물건을 팔고 싶다는 푸념은 아니다. 방송을 진행하는 PD인 나조차도 구매 욕구가 솟구치던 그런 재미가 넘치던 옛날의 홈쇼핑 방송이 한 번씩 그리울 뿐이다. 어렵게 대한민국 최저가로 상품을 준비해서 방송 중에 한껏 가격 자랑해주기를 기대한 협력사가 만에 하나 어딘가 작은 상점 한 군데라도 싸게 파는 곳이 있을 수 있지 않겠냐며 가격 표현을 자제해달라는 심의 의견에 침울해 있는 모습을 보며 오늘은 두서없이 이런 글이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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