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한가운데서 전복을 팔아? - 1

by 지크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580186

* 10년차 PD가 리얼하게 말하는 홈쇼핑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담긴 저의 책이 나왔습니다.


"완도 출장 다녀올 사람? 참고로 버스로 편도 5시간 30분 걸린대"


요즘 시즌인 전복 방송을 스튜디오가 아닌 산지인 완도에 가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편성팀으로부터 전달받고 PD팀에 공유를 하자 모두가 저의 시선을 피합니다.


당연히 지원자가 없을 거라고 예상을 했기에 당황하지 않고 서둘러 짐을 챙겨 사전 답사를 떠났습니다. 떠나는 길에 협력사 담당자와 통화를 하며 전복 관련 회사 내부 시설과 양식장을 둘러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미리 해두었습니다. 에누리 없이 5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완도의 전복 회사. 담당자와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또다시 배를 타고 노화도라는 작은 섬으로 들어가 다시 작은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 양식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양식장을 둘러보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신호를 체크하는 제 모습을 지켜보던 담당자가 나에게 물어왔습니다.


"PD님. 여기는 전복이 어떻게 양식되나 보려고 하신 거죠..?'

"아니요 이왕이면 작업하실 때 맞춰서 여기서 방송을 하면 어떨까 해서요"

"여기서요..? 작업할 때요..? 너무 정신없지 않을까요??"

"저도 걱정은 되는데 그 정도 현장감이 없으면 완도까지 온 게 좀 아까울 것 같아서요"


다행히 담당자가 양식장을 관리하는 어민 분과 협의를 해서 실제 작업할 때 현장에서 방송을 하기로 했습니다. 단 새벽부터 작업을 하기 때문에 6시에는 완도에서 배를 타고 양식장으로 와야 한답니다. 듣기만 해도 피곤해지는 스케줄이지만 매출을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부분이었습니다.


전복 회사 내부도 방송하기에는 괜찮은 곳이었습니다. 전복을 보관하는 수조도 많았고 양식장에서 갓 들여온 전복들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포장되는 전 과정을 볼 수 있어서 시청하는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양식장과 회사 내부 과연 어디서 방송을 할 것인가. 두 곳 모두 장점이 있어서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혼자 고민을 하던 중 완도까지 내려와서 꼭 한 번만 방송을 하라는 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침에 양식장에서 방송을 하고 오후에 전복 회사에서 앵콜 방송을 한다면..?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편성팀과 협의를 통해 방송 횟수를 늘려 2회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오전에 양식장에서 전복을 어떻게 수확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오후에는 회사 내부에서 고객들에게 배송되는 전복이 실제로 어떻게 관리되는지 보여주면서 전복 요리도 소개하는 것으로 방송의 밑그림이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긴 왕복시간 탓에 2박 3일 출장 일정을 잡다 보니 시간이 가능한 쇼호스트가 없어 입사 3개월 차 신입 호스트가 단독으로 방송에 투입된 것입니다. 스튜디오에 잘 준비된 방송을 서브 진행자로 들어가도 긴장되고 실수도 할 시기인데 덜컥 메인 호스트로, 그것도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현장 방송에 투입이 된 것입니다.


방송을 망치고 매출이 안 나오는 것보다 신입 호스트가 홀로 어려운 방송에 던져져서 고생만 하고 방송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출발 전 몇 번이고 매출 부담 갖지 말고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 본인 실수로 돌리지 말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정작 쇼호스트는 재미있겠다며 열정을 내비쳤습니다.


방송 당일. 피곤할 줄 알았는데 방송에 대한 부담감으로 새벽 4시에 알아서 눈이 떠졌습니다. 스튜디오 방송은 제가 준비를 잘하면 대부분 그렇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현장 방송은 내가 아무리 준비를 잘한 들 현장에서 생기는 변수들로 방송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답사 때는 잠잠하던 바람이 하필 방송 당일 화라도 난 듯 휘몰아쳤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더 강해진 바람은 마이크에 목소리가 제대로 담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를 방해했고 방송 출연을 위해 새벽부터 꽃단장한 호스트의 머리카락을 헝클어 놓았습니다. 마이크에 바람막이를 몇 겹을 덧씌워 겨우 방송을 할만한 수준으로 만들어 놓고 이왕 호스트 머리 스타일이 망가진 김에 방송 시작을 양식장으로 들어오는, 빠르게 움직이는 보트 위에서 하자는 아이디어가 현장에서 나왔습니다.


방송이 시작되고 호스트가 달리는 보트 위에서 시청자들을 맞이했습니다. 보트가 양식장으로 들어서며 정말 바다 한가운데서 방송이 시작되자 시청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완도예요?"

"바다 풍경이 너무 예뻐요~"

"VJ 특공대인가요? 전복이 콸콸콸~"


바다 한가운데서 실제 크레인을 이용해 양식장에서 전복이 붙어있는 쉘터를 꺼내 배 위로 옮기고 전복을 따고 세척하고 크기와 무게에 따라 자동으로 분류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거기다 따자마자 손질한 전복회를 맛있게 먹는 호스트의 모습이 나가자 시청자들의 반응과 매출이 한 번에 폭발했습니다.

주문을 인증하는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매출 확인을 안 해도 대박을 예감한 순간이었습니다.


방송 뒤편에서는 전복 수확 작업이 우리와 무관하게 진행되며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온갖 기계음과 바닷소리가 방송을 탔(?)지만 방해 요소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장감을 살리는 장치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본인의 익숙한 작업장에서, 게다가 매출이 잘 나오고 있다는 소식에 같이 출연을 한 어민분은 신이 났습니다.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좋은 전복 고르는 법부터 간단하게 전복 손질하는 법까지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법한 내용을 전문가처럼 소개했습니다.


고객들의 반응에 힘입어 20분 연장까지 하며 평소 매출 대비 4배가량 많은 매출을 올리고 오전 방송이 끝이 났습니다.


본인의 첫 방송을 끝내고 상기된 호스트는 유독 방송이 어땠는지 매출을 어땠는지 신경을 썼습니다. 자기 탓에 방송이 잘못된 건 아닌지 걱정하는 호스트에게 일부러 고객들이 올린 칭찬 댓글들을 모아서 보여주며 아주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잊지 않았습니다.


피로가 몰려왔지만 오전 방송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오후에 예상치 못한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을 미리 알았다면 이런 좋은 분위기는 유지되지 못했겠지만.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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