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바다 앞에서 홈쇼핑 방송을 하다

by 지크

습니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580186

홈쇼핑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엮은 저의 책이 나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여행 욕구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홈쇼핑에서도 여행 상품이나 호텔 상품을 많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갑자기 부산에 있는 호텔 객실을 판매하는 방송이 생겼는데 호텔 현지에 가서 방송을 하면 좋겠다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작은 스튜디오에서 소소하게 라이브 커머스를 운영하던 PD들에게는 비상이 떨어졌습니다. 지원자를 구했지만 모두 난색을 표해 결국 제가 담당을 하게 되었고 MD에게 간단한 설명만 들은 뒤 사전 답사를 위해 급히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총지배인과 상품 판매 담당자들과 함께 서둘러 객실들과 수영장 등의 부대시설을 둘러보고 대략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동선을 메모하며 잠시나마 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지배인님 혹시 이 호텔이 다른 호텔들과 차별화된 포인트는 무엇이 있을까요? 지금껏 호텔 객실을 판매하는 홈쇼핑 방송은 객실과 수영장, 조식 소개라는 틀에 박힌 형식을 고수하고 있거든요. 이번 방송만큼은 색다른 화면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싶어서요"


제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던 총지배인은 시간이 없더라도 세 군데만 꼭 둘러보고 돌아가면 좋겠다는 말을 했고 이 호텔만의 특징인 갤러리, 영어유치원, 오디오 및 영화 감상실을 소개해주었습니다. 고풍스러운 미술품들이 걸려있는 갤러리와 편안히 음악과 콘서트 영상을 즐길 수 있는 미디어 감상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아이를 맡겨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영어유치원을 보자 컨셉이 번개같이 떠올랐습니다.


"먹고 자고 수영하는 호텔 말고 진정 나를 위한 힐링이 되는 호텔"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아름다운 음악에 취할 수도 있으며 아이들로부터도 잠시 해방되어 나만의 힐링 타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면 이 호텔만의 차별화된 매력을 뽐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총지배인은 컨셉이 너무 좋다며 애정을 담아 호텔에 대한 소개를 끝없이 이어갔습니다. 좋은 컨셉에 마지막 무기가 필요했던 저는 조심스레 총지배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총지배인님. 이 호텔에 대해 가장 잘 아시는 만큼 혹시 방송에 출연하셔서 방금 보여주신 그런 장소들의 의미와 특징을 풀어주시면 어떨까요? 지금껏 호텔 방송에서 총지배인들이 나와서 호텔을 소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상품을 판매하는 쇼호스트가 아닌 호텔의 총지배인이 나온다면 방송이 굉장히 신선할 것 같아요"


대부분 그렇듯 손사래를 치는 반응을 예상했지만 호텔과 매출을 위해서라면 뭐든 못하겠냐며 총지배인은 저의 출연 제의에 단번에 응했습니다.


많은 것을 협의하고 얻어가는 것 같아 서울로 돌아가는 제 발걸음은 정말 가벼웠습니다.


대망의 방송 당일, 쇼호스트와 스탭들과 함께 아침 기차를 타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미리 협의한 동선을 다시 공유하며 우리가 촬영할 공간들은 방송 중 투숙객들에게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게 통제해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쇼호스트 리허설과 총지배인 리허설을 한 번씩 진행하자 어느덧 방송 시간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말도 안 되게 갑자기 모든 마이크에 말썽이 생겼습니다. 쇼호스트와 총지배인이 찬 마이크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몇 번이고 라인을 갈아 끼우고 배터리를 교체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방송은 10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이러다 무성 방송을 할 판이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기술 스탭과 화상으로 연결하여 마이크를 보여주고 가까스로 문제를 해결하니 방송 시작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사전에 꼭 체크해야 할 것들 몇 개는 확인도 못하고 허둥지둥 첫 시작 장소로 뛰어갔습니다.


호스트와 카메라 감독의 호흡이 채 돌아오기도 전에 방송은 시작되었고 아름다운 해운대를 배경으로 고급스럽게 자리한 호텔을 자랑하며 쇼호스트는 로비로 들어왔습니다. 주변에서는 이게 무슨 일인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지켜봤고 쇼호스트는 아랑곳 않고 본인의 멘트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비장의 무기 총지배인의 출연 시간. 갤러리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총지배인이 화면을 넘겨받아 호텔 갤러리의 의미와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대략 설명을 시작했고 그 틈에 우리는 몇 층 위 객실로 헐레벌떡 올라갔습니다. 객실에서 수영장으로, 수영장에서 식당으로, 식당에서 라운지로 우리가 이동하는 동안 총지배인이 훌륭하게 빈 시간을 책임져주었습니다. 게다가 특이한 부대시설 소개로 인해 전에 없던 많은 시청자들이 방송에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장소를 보여주기 위해 뛰어다니고 고객들 반응과 매출까지 확인하다 보니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방송이 끝나버렸습니다.


결과는 역대 호텔 방송 최고 매출! 입 떡 벌어지게 많은 매출을 했다던가 매진이 되었다던가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도 호텔 측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매출을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전쟁과 같은 방송을 끝내고 우리는 그제야 식사를 하며 오늘의 아찔했던 위기와 방송 중 에피소드를 공유하며 웃을 수 있었습니다. 훌륭히 방송 시간 일부를 책임져 준 총지배인에 대한 칭찬도 빠질 수 없었습니다.


모두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짧게나마 해운대 구경이라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잠시 객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만나기로 했지만 긴장이 풀린 나머지 모두가 곯아떨어져 그 누구도 아름다운 해운대의 야경을 보지 못한 건 또 하나의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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