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홈쇼핑] 환승 이별 같던 이직

by 지크

"여보세요?"


얼마 전 방송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출연자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대뜸 제 라이브커머스 경력에 대해 묻더니 조심스레 제안을 해왔습니다.


"모 커머스 회사에서 라이브커머스 실장을 찾고 있다고 하네요. 제가 PD님을 추천드렸는데 생각 있으시면 간단히 인터뷰 해보시죠"


제안 들어보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고 업계의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알겠다고 하니 그분은 냉큼 바로 일정을 잡아보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잠시 뒤 당장 내일 보자는 연락이 왔고 면접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그런 거 필요 없고 간단히 카페에서 이야기나 나누게 될 것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지금껏 해왔던 면접과는 너무 달랐지만 걱정 말라는 이야기에 간단한 이력서만 미리 보냈습니다.


면접 당일.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반팔에 반바지 그리고 배낭을 둘러맨 회사 대표님이 도착했습니다. 대기업의 다소 딱딱한 모습에 익숙해져 있던 저는 그런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인터뷰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30여 분간 저보다 대표님의 말이 오히려 더 많았고 본인이 생각하는 회사 비전과 그 속에서 라이브커머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몇 번이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TV홈쇼핑보다 라이브커머스가 더 재미있고 관심이 있던 저는 열심히 경청했습니다. 라이브커머스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시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 회사에서 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함께 하시죠라는 의례적인 말과 함께 면접은 끝이 났고 그 말이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님을 다음 날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 인사실장님이 바로 처우 제안을 했고 두어 번 말이 오간 후 협상은 끝이 났고 출근 날짜까지 정해졌습니다. 딱히 이직에 관심이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홈쇼핑을 떠날 운명이 되어있었습니다.


사실 첫 직장이었고 좋은 사람들과 마찰 없이 일하고 있던 터라 회사 자체에 크게 불만이 없었습니다. 기존 처우도 그릇이 작은 저에게는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은 저에게 큰 의미였습니다.


비록 일개 피디에서 실장 자리로 가는 것이고 처우가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제가 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이직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습니다.고민 끝에 회사에 퇴사를 알렸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이렇게 이직을 하게 될 줄 몰라서.


마치 오랜 기간 큰 불만 없이 익숙하게 만나던 연인이 있었는데 새로운 이성이 나타나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는, 그런 환승 이별 같은 이직이었습니다.


11년간 홈쇼핑 회사를 다니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그런 경험들이 좋아서 글로 풀어냈습니다. 운 좋게 제 책이 출판되는 경험까지 했습니다.


3년 전부터 라이브커머스 부서로 옮기며 새로운 분야에 눈을 떴고 당시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나 라이브커머스 이야기를 합니다.


TV 홈쇼핑과는 다른 라이브커머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가 결국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아마 라이브커머스를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저를 움직이지 않았을까요.


앞으로 커머스에 대해 얼마나 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얼마나 더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쓸 수 있을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커머스의 미래에 제 몸도 같이 맡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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