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크 May 09. 2022

재미와 판매를 다 잡으려는 커머스 방송의 역설

요즘 커머스 방송에도 예능적 요소를 결합하는 시도를 한다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홈쇼핑 PD 시절, 부부 쇼호스트가 출연해 여행 상품을 판매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적이 있습니다. 사내 커플로 일상생활에서도 티격태격하는 재미가 있는 쇼호스트들이 본인들이 가봤던 여행지 에피소드를 풀어내며 판매하는 이 기획은 당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첫 방송부터 부부 쇼호스트는 비행기를 놓칠뻔한 일, 영어를 잘못 알아들어 엉뚱한 길로 들어서 국경을 넘을뻔한 일, 가이드 팁으로 논쟁을 벌인 일 등을 쉴 새 없이 이야기했고 서로 누가 그때 잘못했냐를 따지며 아주 재미있는 케미를 보여주었습니다. 방송을 진행하는 부조정실은 물론 스튜디오 현장 FD와 카메라 감독들도 소위 말해 빵빵 터지는 그런 방송이었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방송이 종료되었지만 결코 저는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야심차게 준비한 방송인데 매출이 너무 부진했던 것입니다.


첫 방송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심기일전하고 두 번째 방송은 당시 아주 인기 많고 매출이 잘 나오던 휴양지 상품을 준비했습니다. 두 쇼호스트 역시 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본인들의 에피소드를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배우자의 명품 쇼핑 사랑을 폭로하고 종일 쇼핑센터만 간다는 이야기를 하자 표정관리가 안 되는 아내의 모습, 그에 질세라 남편의 휴양지 패션을 지적하며 맞대응을 하는 아내의 모습이 방송을 알차게 채워갔습니다. 하다 하다 첫사랑까지 등장하는 거친 말다툼(?)에 또다시 현장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저만 빼고.

또다시 평소보다도 못한 매출을 기록했고 협력사는 저에게 조용히 부탁을 했습니다.


"피디님.. 재미도 좋지만 그거 때문에 상품 소개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저희도 특별히 좋은 상품으로 힘 실어드린 건데 이렇게 매출이 안 나와서 입장이 난처합니다"


결국 3회 차 방송부터는 상품 설명에 집중했고 매출은 잘 나왔지만 관리자들로부터 일반 홈쇼핑 방송과 뭐가 다르냐는 공격(?)을 받은 끝에 결국 소리 소문 없이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든 것이지만 재미와 매출을 모두 잡으려다 실패한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왜 예능과 결합한 커머스 방송에 대한 뉴스 기사는 많은데 그 방송들이 얼마나 많은 매출을 기록했는지에 대한 후속 기사는 없는 것일까요.


재미있고 시청률이나 조회수가 높으면 장땡(?)인 일반 영상 콘텐츠와 달리 커머스 방송은 매출이라는 목표가 추가됩니다. 가뜩이나 한정된 시간 내에 재미와 매출을 다 잡으려니 이도 저도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또 방송을 하는 플랫폼 회사야 재미있는 컨텐츠에 만족하고 새로운 시도라며 소문이라도 낼 수 있지만 어떻게든 본인들의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하고 싶은 협력사들은 난무하는 상황극과 웃음 뒤에 가려진 소박한 매출을 보며 얼마나 애가 탈까요.


저도 커머스 방송의 성공 공식을 아직 모르고 커머스 방송의 진화는 무조건 반기는 바입니다.

다만 커머스 방송의 차별화를 오직 재미로 판단하고 여기저기서 예능과 결합한 방송을 한다니 일단 나도 해보는 것이 트렌드가 된 것 같습니다. 한 번쯤은 이런 상황에 속이 탈 제조사와 판매사의 입장도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부동산도 라이브 커머스를 해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