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사랑에 대하여

시간이 없다.

by 희원

'30대의 사랑에는 시간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번 연애가 끝나기 전까지 나는 이 말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결혼을 향해 나아가기에 1, 2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했으니까. 특히 나와 같은 30대 중반, 결혼과 출산을 모두 꿈꾸는 여성에게 시간은 더욱 가혹하게 느껴진다.


나는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이던 2020년 초, 딱 서른이 되던 해에 2년을 만난 연인과 이별했다. 그 후 4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했다. 짧게 스치듯 만난 인연을 포함하더라도 3년 가까이 연애를 '쉬었다'. 사실 '쉬었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내게 쉼이란 능동적인 선택이어야 하는데, 나는 늘 사랑을 원했으니까. 어찌 됐든 나는 긴 시간 동안 연애를 '쉬게 됐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아빠의 투병으로 2~3주마다 동생들과 번갈아 본가에 내려가야 했고, 곁에서 간호하던 엄마의 힘겨움은 고스란히 내 몫으로 전이되곤 했다. 결국 아빠가 떠나신 뒤, 남겨진 슬픔 속에 엄마는 불안장애를 앓게 되셨다. 엄마의 전화는 늘 "어디가 아프다"는 말로 시작됐지만, 내게는 "불안하다"는 호소로 들렸다. 실제로 엄마는 위태로웠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2년여의 시간이 흘러서야 엄마는 안정을 되찾았다. 비로소 나도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동안 연애를 못 했을까?' 되돌아보니, 가족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어 나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었던 탓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버거웠던 시간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나는 서른넷이 되어 있었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금 당장 연애를 시작해도 서른다섯에 결혼, 서른여섯에 출산...' 머릿속 계산기가 바쁘게 돌아갔다. 지인들의 소개팅 주선은 이미 바닥이 나 로테이션 소개팅도 나가보고, 나는 평소 좋아하던 클라이밍 크루를 직접 만들었다. 운동 메이트도 구하고, 혹시 모를 인연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그렇게 치열하게 보낸 지 반년쯤 지났을까, 그가 나타났다. 외적으로 완벽한 내 취향의 연하남. 말수가 적어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보였던 사람. 반면 나는 몹시 불안했다. 사실 그동안 나는 가족들을 책임지는 것이 버거워 도망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한없이 기대고 싶었다. 그라면 내가 기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안의 불안을 털어놓으면 그가 떠날까 두려워, 말없이 그에게 의지하려고만 했다. 그와 함께하는 물리적인 시간만을 늘리고 싶어 안달했다. 만난 지 4개월 무렵, 나는 그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이별이었다.


많이도 매달렸다. 결혼하지 않아도 좋으니 만나만 달라고 애원했다. 그가 내 이상형이라 믿었기에, 다시는 이토록 사랑할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본인은 결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마음 급한 나를 붙잡고 있는 건 사랑보다는 미안함이 클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미련의 시간을 건너, 겨우 이별을 '해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과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결혼이란 무엇인지, 나는 왜 결혼을 갈망하는지, 내가 언제 행복한지, 나의 가장 큰 취약점인 외로움의 실체는 무엇인지... 다시 처음부터 배우고 정의 내리는 중이다. 나는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했다. 그게 맹점이었다. 사실 나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자존감 높고 자기애 강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실은 연약한 내면을 감추려 가시를 잔뜩 세우고 웅크린 고슴도치였을 뿐이다. 그를 정말 사랑했을까? 어쩌면 내가 바라는 이상향에 그를 끼워 맞추고, 그 환상을 사랑했던 건 아닐까. 그의 진짜 모습을 보여달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지난 5년여의 시간.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갇혀(동생들은 정작 내가 도망치기만 했다고 말하지만), 동굴 속에 숨어 나를 방치했던 시간들을 반성한다. 이별을 겪어내는 동안 깨닫고 배운 것들을 이제 스스로 정리하고, 독자들에게도 나누기 위해 글을 시작해 보려 한다.


글을 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써 내려가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기억과 감정의 '배설'에 가깝다. 앞서 쓴 문장을 읽을 때마다 그 지리멸렬함에 숨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