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왕자는 오지 않는다

비로소 깨달은 진짜 구원

by 희원

나는 장녀다, 남동생만 둘 있는. 엄마는 나랑 둘째를 낳고 셋째를 임신했을 때, 내가 외롭지 않게 막내는 꼭 딸이었으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막내는 아들이었다. 우리 남매간 우애는 좋은 편이지만, 나는 늘 자매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운 장녀로 자랐다. 아무래도 남동생들과는 정서적 거리가 조금 있다. 자매끼리도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많다지만, 같은 성별의 형제가 나눌 수 있는 공감대는 분명 다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양가에서도 첫 손주였기에 사촌 언니나 오빠도 없었다. 늘 의지하거나 내게 가이드가 되어줄 또래 선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첫 손주라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어딘가 부족했다. 나는 동생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주는 누나였기에, 오히려 나 같은 누나를 둔 동생들이 부러웠다. 나 혼자 세상에 부딪히고 겪어나갈 때 같은 세대의 멘토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곤 했다.


어릴 적 나는 칭찬 듣는 걸 좋아하는 착한 딸이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하셨다. 초, 중학교 때까진 곧잘 했지만, 엄마의 압박은 점점 무거워졌다. 10살, 11살 어린 나이에 시험 기간이면 주말에 할머니 댁에 가서도 문제집을 풀어야 했다. 말 잘 듣는 딸이었던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가 점점 싫어졌지만, 밤 10시 드라마를 하기 전까진 엄마의 감시 때문에 책상에 앉아있어야 했다. 공부하는 척, 책이라도 펴놓고 졸고는 했다. 그때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척'이라도 했던 건, 칭찬을 받고 싶어서였는지 혼나기 싫어서였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사춘기가 되어서는 벗어나고 싶었다. 부모님의 감시는 감옥 같았고, 억압하는 가정환경에서 늘 도망치고 싶었다. 나의 꿈은 오직 '독립'이었다. 당시 사귀었던 남자친구에게 부모님이 싫다고, 나를 괴롭히는 동생이 너무 싫다고 투정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토록 외로웠던 것 같다. 이 가정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고, 억압하고 강요하는 사람만 있다고 느꼈으니까. 그래서 고등학생의 어린 연애였지만 남자친구에게 많이 의존했다. (사실 그래서 그 사람과 이별 후 많이도 힘들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챕터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성인이 되어 나는 그토록 원하던 독립의 꿈을 이뤘다. 스무 살, 타 지역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간호학과 공부는 너무 힘들었고, 2학년 때부터 기숙사를 떠나는 친구들이 많아지자 나는 또다시 외로움에 사무쳐 매주 본가에 갔다. 그토록 독립을 원했으면서 결국 외로워서 집을 찾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춘기 때도 나는 사실 가족에게 가장 의지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20대 후반, 아빠가 루게릭병 진단을 받으셨다. 간호사였던 내가 검사 결과를 가장 먼저 알게 되었는데, 그때의 두려움을 잊지 못한다. 이후 우리 가족은 모두 무너졌다. 몸이 약한 편이었던 엄마도 견디기 힘들어하며 나에게 많이 의존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또 여러모로 상처를 받았다. 나는 아직 어리고,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들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는데. 나도 아빠가 아픈 게 무서운데. 간호사라는 이유로 아빠뿐 아니라 엄마의 보호자 역할까지 해야 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부모님은 나의 보호자가 아니구나,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구나.' 이 세상에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은 없다는 생각과 함께 전례 없는 외로움이 찾아왔다.


나는 나의 외로움을 구원해 줄 누군가를 늘 기다려왔다. 사랑은 운명 같은 것이라 믿으며,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길 꿈꿨다. 이전 연애가 끝나고 아빠의 투병과 임종, 그리고 애도 기간까지 4~5년 동안 나타나지 않는 그 운명을 계속 기다렸다. '이제 30대 중반이니, 이번에 만나는 사람과는 꼭 결혼해야지. 그럴 사람 만나려고 내가 이렇게 오래 기다린 거야.' 하지만 이번 연애도 큰 아픔을 남기고 끝났다. 만나는 동안 애정 표현도 적고, 본인의 미래에 내가 없던 사람. 충분히 마음을 나누지 않는 그 사람을 나는 구원자라 착각하고 결혼을 꿈꾸었다. 돌아보면, 나는 내 환상에 갇혀 본질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짧은 4~5개월의 연애, 그 후 나는 꽤 아픈 시간을 보냈다. 과연 이별 때문이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아마도 나의 외로움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나를 채워주지 못하고, 가족에게서 채우지 못한 것을 남에게서 얻으려 했던 것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오래전 상담과 최근의 이별을 겪으며 나는 엄마에게 다시 마음을 열었다. 힘들면 힘들다고 숨기지 않고 보여줬다. 내가 의지할 수 없는 대상인 줄 알았던 엄마는 이제 나를 감싸주고, 기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동안 엄마도 성장하셨겠지만, '나도 좀 진작 기대 볼걸. 왜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을까' 하는 후회도 든다.


결국 나의 뿌리, 그리고 '나'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이별의 아픔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구원자는 결국 나 스스로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들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대화할 수 있어야, 그것들이 마음속 깊이 숨어있다 괴물처럼 튀어나오지 않고 소화될 수 있을 테니까.


이제는 내 마음속 이 작은 괴물도 예뻐해 주련다.

그 아이는 나 스스로에게 이해받을수록 괴물이 아닌 예쁜 꽃으로 피어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