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돌아가신 마을의 한 어머님은
제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아직 깜깜한 새벽에 밭에 나가 일하고 있으면
밥 때되서 할아버지가 경운기를 타고 데리러 왔다.
그럼 집에 와서 밥 해먹이고
아이들 도시락 싸 보내고
다시 밭으로 간다.
점심에 집에 와서 밥 해 영감님 드리고
빨래 해 널어놓고
다시 밭일 하러 가고...
어두워지면 집에 와서
저녁밥 해먹고 집 치우면 12시가 훌쩍 넘더라.
실제로 요즘처럼 논 농사가 시작되지 않을 때는
할머니들이 밭에서 일하시는 시간에
할아버지들은 정자에 모여계십니다.
남자들은 쪼그려앉기 힘들다고
밭일은 여자들의 일로 인식되어있고
그외에도 종자를 갈무리하거나
생산물을 저장식품으로 만드는 일이 전부 여자 몫이고
당연히 집안 살림도 여자 몫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람이 부족하고, 농기계가 많아져서
할아버지들이 기계를 사용하는 밭일은 하시지요.
귀농인들이 많아지면서
부인은 직장 다니고 남편이 밭일을 도맡은 가정도 많고
같이 밭일을 하는 모습도 많이 보이지만
아직도 살림은 여자만의 몫인 경우가 많고
저장식품과 농산물 갈무리 부분도 여자들의 몫이라는 인식이 많습니다.
어르신들이야 그런 시대를 살아오셨으니 어쩔 수 없겠지요.
그런 분위기를 알기에 귀농을 반대하는 여자분들이 많구요.
시대가 달라졌는데 아직도 구시대를 살면서
아내에게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귀농 형태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집안 살림은 여자가 한다, 밭일은 여자가 한다
이런 법은 없습니다.
부부가 각자 자기가 잘 하는, 할 수 있는 일을 위주로 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짐을 나눠지려 하는 것이
일도 놀이가 되는 즐거운 시골 생활의 바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