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지 못하던 시기에도
예전에 만들었던 프로필의 글귀는 그대로 두었었습니다.
무경운, 무투입, 무관수, 무제초, 무살충, 무석유의 야생농사.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일부는 당분간 지킬 수 없고
일부는 영영 포기해야 해서
글귀를 고쳤습니다.
위 사진 한 장에
당분간 혹은 영영 포기한 모든 것이 나타납니다.
저희 밭처럼 흙 뒤집는 공사를 한 땅은 농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소위 '생 땅'이라고 해서 영양분도 없고
비 온 후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립니다.
농사를 시도해 봤었지만
씨앗에서 올라온 싹이나 키워 심은 모종이나
모두 얼마 못 버티고 죽어버리더라고요.
이 땅에 유기물이 쌓여 흙이 좋아지려면 몇 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기다리기만 할 수 없어서 퇴비를 넣었습니다.
무투입을 못 지켰는데
앞으로 계속 넣지는 않을 것이고 비료도 안 쓸 겁니다.
풀 자라지 말라고 덮어주는 멀칭비닐은
사용한 적 없고 앞으로도 사용 안 할 거지만
밭 만들고, 돌 고르고, 퇴비 섞느라
휘발유 넣는 관리기를 사용하고 있으니
무석유도 못 지키고, 무경운도 못 지킵니다.
집 아래에 있는 마을 어른들 밭에
물 줄 때나 농약 뿌릴 때 물이 없어 고생하시길래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 받는 통을
저희 집에 하나 마련해 드렸는데
가뭄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져서
어른들 쓰시기도 부족하고
저희도 같이 쓰려고 물통을 세 개로 늘렸습니다.
지하수라면 안 쓸 텐데 흘러내리는 물이라
오래 가물 때는 그 물을 줄 생각이니
무관수는 영영 포기입니다.
아직 밭을 만들고 있어서 내년까지는 일부 포기하고
제초제와 살충제 뿌리지 않는 것만 지킬 생각입니다.
그 이후에는 야생에 가까운 농사를 이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