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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2無 농사.

by 무니

농사를 짓지 못하던 시기에도

예전에 만들었던 프로필의 글귀는 그대로 두었었습니다.



20231003-1.JPG


무경운, 무투입, 무관수, 무제초, 무살충, 무석유의 야생농사.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일부는 당분간 지킬 수 없고

일부는 영영 포기해야 해서

글귀를 고쳤습니다.



20231003-2.JPG


위 사진 한 장에

당분간 혹은 영영 포기한 모든 것이 나타납니다.


저희 밭처럼 흙 뒤집는 공사를 한 땅은 농사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소위 '생 땅'이라고 해서 영양분도 없고

비 온 후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립니다.

농사를 시도해 봤었지만

씨앗에서 올라온 싹이나 키워 심은 모종이나

모두 얼마 못 버티고 죽어버리더라고요.


이 땅에 유기물이 쌓여 흙이 좋아지려면 몇 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기다리기만 할 수 없어서 퇴비를 넣었습니다.

무투입을 못 지켰는데

앞으로 계속 넣지는 않을 것이고 비료도 안 쓸 겁니다.


풀 자라지 말라고 덮어주는 멀칭비닐은

사용한 적 없고 앞으로도 사용 안 할 거지만

밭 만들고, 돌 고르고, 퇴비 섞느라

휘발유 넣는 관리기를 사용하고 있으니

무석유도 못 지키고, 무경운도 못 지킵니다.



집 아래에 있는 마을 어른들 밭에

물 줄 때나 농약 뿌릴 때 물이 없어 고생하시길래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 받는 통을

저희 집에 하나 마련해 드렸는데

가뭄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져서

어른들 쓰시기도 부족하고

저희도 같이 쓰려고 물통을 세 개로 늘렸습니다.


지하수라면 안 쓸 텐데 흘러내리는 물이라

오래 가물 때는 그 물을 줄 생각이니

무관수는 영영 포기입니다.



아직 밭을 만들고 있어서 내년까지는 일부 포기하고

제초제와 살충제 뿌리지 않는 것만 지킬 생각입니다.

그 이후에는 야생에 가까운 농사를 이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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