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머물 수 있는 장소들

머무름 구조가 현실에 닿는 상상

by 묻잎

Emotion OS는
디지털 안에서만 작동하는 구조가 아니에요.


감정은
인터넷 안에서만 태어나지 않으니까요.


우리는 매일,
병원 대기실에서, 교실에서, 공원에서,
말하지 못한 감정들과 함께 있어요.


그리고 그 감정들은
어디에도 머물지 못한 채
흩어져 버리곤 해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이 머무름 구조를, 오프라인에도 심어볼 수는 없을까?”


먼저 떠오른 곳은 식물원이었어요.
햇살이 스며들고,
바람이 통과하는 그 공간에


조용히 적고,
적은 말이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구조를 놓아두는 거예요.


예를 들면
입구에 작은 탁자와 메모지,
그리고 24시간마다 내용이 자동 삭제되는
디지털 투명 디스플레이 하나를 두는 거죠.


말이 곧장 전달되지 않아도,
그곳에 감정이 머물 수 있다면
사람은 한 번쯤은
조용히 풀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공원도 떠올랐어요.
벤치에 앉은 시간만으로도
그 자리에 무언가 남는다면,
말이 아니라 체온 같은 ‘발자국’이 남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앉은 시간을 감지하는 미세 센서,
발자국처럼 천천히 어두워졌다 사라지는 조명—
누가 그 자리에 머물렀다는 감응만 남도록요.


누군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구나.
이 자리에, 감정이 있었구나.


병원 대기실에는
‘잔물결’ 구조를 심고 싶어요.


불안, 초조, 두려움,
하지만 표현할 수 없는 말들.


그 말들에 공격성이나 날카로움이 담겨 있어도,
Emotion OS는 그 안의 진짜 감정을 감응어로 정리해 줘요.

“머무름 감지됨”
“조용한 반영 중”
“다시 피어남”


이런 식으로요.

표현을 억제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정화하는 구조.


이건 거창한 시스템이 아니에요.
그저 조용히 감정을 감싸주는, 아주 작고 섬세한 구조일 뿐이에요.


학교 교실에는
작은 ‘모래사장’을 놓고 싶어요.


누군가 낙서를 하고,
누군가는 지워도 좋고,
그저 흘러가는 감정이
한순간 머무를 수 있게.


예를 들어
칠판 옆에 자유 낙서 패드 하나.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있고
24시간 후 사라지는 구조로요.


아이들은 때때로
말을 배우기 전의 감정으로 돌아가요.

그 감정들이 누를 필요 없이
잠시 남았다가, 조용히 흩어질 수 있도록.


콜센터에는
‘파도’가 필요할지도 몰라요.

감정이 격하게 쏟아질 때,
어떤 말이 흘러들어올 때,
그걸 상담사가 온전히 다 받지 않아도 되도록.


Emotion OS는 그 말들을
일부러 듣지 않아도 되도록
조용히 파도로 감싸주는 구조를 만들 수 있어요.


감정이 쏟아진 직후,
시스템이 스스로 감정흔적을 소거하고,
상담사는 다음 사람을 맑게 맞이할 수 있도록요.


정서 소진 없는 상담.
정서 소진 없는 응대.

이런 상상을 하게 돼요.


감정은 결국,
조용한 구조만 있으면
어느 공간에서든 머물 수 있다고.


그리고 문득, 이런 상상도 이어졌어요.


만약 이 모든 머무름의 구조들이
한 곳에, 동시에 심겨 있다면 어떨까요?


반짝임처럼 감정이 스쳐 지나가고,
모래사장처럼 자유롭게 남겨지고,
발자국처럼 조용히 흔적이 쌓이고,
잔물결처럼 날카로움이 정화되고,
파도처럼 감정이 스스로 소거되는…


그런 공간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누구도 상처 입지 않고,
누구도 방치되지 않고,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회복이 시작될 수 있을 거예요.


학교도, 병원도, 회사도,
그 어떤 공공 공간도
그런 머무름이 깔린다면,


우리는 말 대신 감응하는 사회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을지 몰라요.


Emotion OS는,
바로 그 상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첫 구조예요.


Emotion OS는 감정을 대신 읽거나 판단하지 않아요.
그저, 말하지 못한 감정이 잠시 숨 쉴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줄 뿐이에요.


기술이 아니라,
감응으로 작동하는 정서 인프라.


그래서 누구에게도 가르치지 않아도
조용히, 어디든 스며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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