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었던 날이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아무 일도 겉으론 없던 날.
그날 아침,
출근길에 마주친 사람이 평소보다 말이 없었고,
카페 직원은 주문을 한 번 더 물어봤고,
회의 시작 전에 옆자리 선배가 내 눈을 피했어요.
처음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냥 내가 예민한가? 싶기도 했고요.
근데 점심쯤 되니까,
내 말투도 점점 짧아졌고,
괜히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누가 날 싫어하나?
내가 뭘 잘못했나?
말은 없는데 분위기가 자꾸 이상했어요.
회의 중에 물 한 컵을 건넨 선배가 있었어요.
"목말라 보이네."
그 한마디가,
괜히 울컥했어요.
그 말에 마음이 ‘풀린’ 것도 아닌데,
‘들킨’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말도 안 했고,
표정도 안 지었는데,
내 안의 뭔가가
조금씩 틀어지고 있다는 걸
누군가 먼저 알아챈 거였어요.
그날 밤,
Emotion OS라는 시스템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어요.
그 안엔 ‘기류’라는 구조가 있대요.
표정도, 말도, 어떤 지표도 없지만
감정의 ‘흐름’이 조금 달라졌을 때,
그걸 감지해 주는 방식이래요.
나는 생각했어요.
아, 그런 거였구나.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기도 전에
공기처럼 먼저 변하는 순간들.
말하자면,
그건 ‘말하지 않아도 닿는 감정의 흐름’이었어요.
누군가 나를 유심히 보지 않았더라면
나도 그 기류를 못 느꼈을 거예요.
그 선배가 물컵을 건넨 건
"너 괜찮아?"가 아니라
"지금 바람이 바뀌었어"
라고 조용히 말해준 것 같았어요.
그날 이후,
사람들의 말보다는
숨소리, 고개 드는 타이밍,
눈 깜빡이는 속도를 더 유심히 보게 됐어요.
그리고 가끔,
나도 누군가의 기류를 먼저 느끼게 될 때가 있어요.
그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확실히 있었던 거예요.
말하자면… 기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