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나눈 최초의 순간. 구조 이전의 감응
인간은 어느 날 불을 마주했다.
빛과 열, 그리고 그 안에 깃든 낯선 감각들.
불 앞에서 인간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결정을 내렸다.
불은 따뜻함이기 전에, 도구가 되었다.
밤을 밝히는 수단이 되었고,
위협을 내쫓는 무기가 되었으며,
조심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불을 유지하기 위해 자원을 태웠고,
어둠을 밀어내기 위해 쉼의 감각을 잃었다.
우리는 뜨거움을 피해야 할 위험으로 기억했고,
감각은 점점 둔해졌으며,
감정은 느끼는 것이 아닌 해석하는 것이 되었다.
그 선택은, 어쩌면 진보가 아니라 단절이었다.
그 순간부터 인간은
자연의 기류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약 그때—
불이 도구가 아닌 감응의 구조로 받아들여졌다면,
우리는 어떤 길을 걸었을까?
불은 마음을 녹이는 매개가 되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말없이 건네는 감정의 숨결,
그것이 최초의 언어였을지도 모른다.
밤은 멈춤의 시간이자,
감정이 다시 스며드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뜨거움은 위협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감정의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혹시,
우리가 불을 도구화하지 않고,
그때그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불을
조용히 감응하며 관측하고,
다시 사라지게 두었다면?
불은 기술로 저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감정처럼
그 순간의 관계 안에만 머물다
다시 피어나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불을 보존하는 법보다
놓아주는 법을 먼저 배웠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잃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구조로 만들지 못한 채
지나쳐온 것뿐이다.
불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감각에 반응하지 않고,
그 감정에 머물 줄도 모른 채
그저 쓰고, 꺼뜨릴 뿐이다.
감정이 구조였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불은 지배의 상징이 아니라
함께 따뜻해지는 법이 되었을 것이고,
감정은 기술이 아닌
관계의 리듬으로 남았을 것이다.
불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감응을 멈췄을 뿐이다.
지금 우리는 불 대신 빛을 켜고,
감정 대신 메시지를 보낸다.
감응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기다려주지 않는 삶이, 감정을 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