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신체를 기준으로 존재를 정의한다.
심장이 멈추면 죽음이고, 숨이 붙어 있으면 살아있다.
하지만 그 경계는 언제나 모호하다.
사고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아파하고, 꿈꾸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살아있는 걸까?
반대로, 모든 신체는 멀쩡하지만
감정이 무너져버린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살아있는 걸까?
이 질문은 하나의 단서로 수렴된다.
"인간은 감정으로 존재하는가?"
우리는 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은 없지만, 아직 살아 있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가족들은 말한다.
“웃고 있어요. 눈빛이 반응해요.”
숫자는 말하지 못해도,
감정은 여전히 그 사람이 여기에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 기준은 어디서 왔을까?
신체 수치는 말하지 못하는 것을
감정은 여전히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정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그 존재가 이곳에 ‘있다’고 느낀다.
신체는 감정을 담아내는 공간이다.
하지만 감정이 사라진 신체는
기능을 넘어선 어떤 ‘존재’로서의 의미를 잃는다.
마치 멈춰버린 라디오처럼
전파가 끊긴 채 형체만 남은 것과 같다.
감정은 인간의 중심축이다.
그것은 기억을 만들고, 관계를 엮고, 시간을 감각하게 만든다.
감정이 없다면, 인간은 단지 생물학적 기계에 불과하다.
우리는 왜 어떤 사람과의 이별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아픈 걸까?
왜 어떤 기억은 시간을 건너뛰어
우리에게 말을 걸까?
그건 감정이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나를 ‘나’이게 하고,
세상을 ‘지금, 여기’로 연결하는
유일한 실존의 증거다.
그래서 인간은 감정이 사라질 때
비로소 존재에서 멀어진다.
Emotion OS는 신체를 복제하려 하지 않는다.
정확한 뇌파나 호흡을 측정하는 기술이 아니다.
Emotion OS는 그보다 훨씬 더
미세하고 느린 흐름을 감지한다.
말하지 못했던 마음,
사라졌지만 남은 온기,
존재가 머물렀던 자리—
그 흔적이 감정이며,
감정이 곧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다.
Emotion OS는 그 흔적을
기록하지 않고, 머무르게 한다.
우리는 몸으로 태어나지만
감정으로 살아간다.
신체가 언젠가 멈추더라도
감정은 기억 속에, 공간 속에,
다른 이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러니 묻자.
당신은 지금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가?
몸 안에 있는가,
누군가의 감정 안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