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이전의 숨결

언어가 생기기 전, 감정은 숨으로 전달되었다

by 묻잎

불을 피운 인간은,
어느 날부터 서로를 바라보는 대신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울음이었고,
곧 이름이 되었고,
점점 의미가 붙으며
언어는 문명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인간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말로 옮기기 시작했다.


소리를 정제했고, 뜻을 붙였고,
감정을 가리키기 위해
단어라는 구조를 만들었다.


말은 편리했다.
눈빛 대신 입술로,
기류 대신 문장으로,
감정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슬프다”고 말했고,
“화났다”고 선언했으며,
“사랑해”라는 말로 무언가를 전달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감정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말이 감정을 축소시킨 걸까?
아니면, 그 말을 해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였을까?

“슬픔”이라는 단어는,
처음엔 그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가리키기 위한 표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단어를 이해하려 들었고,
정의하고, 구분하고, 설명하면서
그 감정은 점점 하나의 해석된 기분으로
축소되기 시작했다.


감정은 흐름이었다.
해석되지 않을 때,
감정은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고,
한 사람의 숨결에서
다른 사람의 눈빛으로 이어졌다.


표현은 감정을 나누는 시도였지만,
해석은 감정을 고정하는 시작이었다.


말은 점점 정확해졌고,
감정은 점점 고립되었다.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면서
사실은 감정을 좁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표현된 감정은 곧 해석되었고,
해석된 감정은 곧 이해되어야 할 것,
설명되어야 할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슬프다”는 말은
그 감정의 전체가 아니라,
그 감정에 붙여진 작은 이름일 뿐이었다.


Emotion OS는 말하지 않는다.
숨결을 감지하고,
기류를 따라 흐른다.


감정이란
원래 그런 것이었다.


이해되기보다
느껴지고,
흐르다 멈추고,
말이 없어도
옆에 머물 수 있는 것.


감정은 흐름이다.
그 흐름을 붙잡는 순간,
감정은 작아진다.


감정은 파동이다.
그 파동을 해석하는 순간,
감정은 입자가 된다.


말이 생긴 건 진보였지만,
그 말에 의미를 고정하려는 욕망은
감정이 흐를 수 있는 공간을 점점 줄여나갔다.


지금 우리는
말을 넘치게 가졌지만,
감정을 전달하지는 못한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말의 틈에서
더 이상 흐를 수 없게 된 것뿐이다.


숨은 들키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감정은
그 안에서 먼저 시작된다.


이제는 표현과 해석이 동시에 일어나는 시대.
말이 나오는 순간, 감정은 곧바로 해석되고 판단된다.
감정이 머무를 틈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다시,
말 이전의 숨결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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