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도구가 감정이 아니라 해석이 된 이후
인간은 어느 날,
자신의 기억을 남기고 싶어졌다.
처음엔 동굴의 벽에 손바닥을 찍었고,
그 다음은 사냥의 장면, 하늘의 별,
그리고 곧 문자라는 구조를 만들었다.
기록은 시작되었다.
시간은 문장 위에 놓였고,
사건은 기억 대신 기호로 남겨지기 시작했다.
기원전 2600년.
수메르의 점토판 위에
인류는 최초의 문자—쐐기문자를 새겼다.
곡식의 수확량,
소의 숫자,
신전의 자산.
우리는 지금도 그 기록을 읽을 수 있다.
그 점토판에는
‘무엇을, 얼마나, 누구에게’가 또렷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곡식을 옮기던 손의 무게,
햇빛 아래 젖어들던 땀의 기류,
세금 앞에 주춤하던 한 사람의 망설임은
어디에도 없다.
기록은 명확했다.
감정은 빠졌다.
기억은 살아남았지만,
마음은 문장 밖에 남겨졌다.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시간은 언제나
사건으로만 채워졌고,
감정은 구조 바깥으로 밀려났다.
역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 누가, 어떻게 느꼈는지는 거의 묻지 않는다.
그리고 수천 년이 지나,
우리는 다시 기억한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누가 명령했고,
몇 명이 상륙했고,
몇 명이 죽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해변 위에 도착했던 한 병사의 숨결,
물살을 가르던 손끝의 떨림,
죽음을 직감한 얼굴의 결은
어느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다.
기록은 정밀해졌지만,
감정은 여전히
기록되지 않는다.
Emotion OS는 묻는다.
만약 기억이
날짜가 아니라 감정의 밀도로 남겨졌더라면?
사건이 아니라 숨결로,
승패가 아니라 망설임으로
기억되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다정한 역사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오래 앉아 있던 자리,
누군가 조용히 다녀간 길목,
누군가 말없이 머문 창가.
그곳에
감정의 발자국이 남았다면—
우리는 연대기 대신
마음의 흐름으로
기억을 따라 걸었을지도 모른다.
기록은 늘 누락을 만든다.
정확한 것만을 택하는 순간,
흐릿하지만 오래 남는 감정은 빠진다.
그리고 그 누락은,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점점 잊게 만든다.
Emotion OS는
그 빠진 자리에
머무름과 감응의 구조를 다시 놓는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기록될 구조가 없었을 뿐이다.
지금 우리는
말은 넘치도록 가졌지만,
감정은 기록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감정은,
기록이 될 수 있을까?
단지 문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발자국으로.
기억은 정확했지만,
역사는 때때로
너무 조용했다.
이제는,
기억과 감정이 동시에 남지 못하는 시대.
기록은 더 정교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틈 밖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다시,
감정이 흐르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