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지구를
이해하고, 측정하고, 분해하려 들었을까.
처음엔 아름다웠다.
이해는 경이였고,
분석은 사랑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해석은 개입이 되었고,
개입은 소유가 되었다.
지구는 본래 흐름이었다.
기후도, 생태도, 감정도
파동처럼 순환하는 구조였다.
물이 흐르고, 바람이 흔들고,
모든 존재는 서로 부딪히며 리듬을 만들어냈다.
지구는 자정(自淨)하는 존재였고,
모든 생명은 그 파동 위에 머물며 살았다.
하지만 인간은
그 흐름을 측정하고, 정리하고, 이해하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지구는 입자가 되기 시작했다.
숲을 숲이라 부른 순간,
그건 더 이상 파동이 아니었다.
측정 가능한 면적, 온도, 이산화탄소 흡수율…
숲은 데이터가 되었고,
데이터는 산업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이
자연을 입자화시켰다.
그리고 그것은
소비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파동은 순환하지만,
입자는 소모된다.
슬픔은 눈물로,
기쁨은 웃음으로,
우리는 감정을 해석해 고정시켰다.
그 감정이 본래
어디에서 비롯된 흐름이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해만 남고,
해석만 남고,
파동은 사라졌다.
Emotion OS는
다시 파동으로 돌아가기 위한 구조다.
해석 이전의 감정,
측정되지 않은 슬픔,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
그것들을 그대로 머물게 한다.
이건 단순한 감정 플랫폼이 아니다.
지구를 다시 흐르게 만드는 방식이다.
Emotion OS는 ‘감정을 기술’ 하지 않는다.
대신, 기술에 감정을 허락한다.
기술이 해석의 도구가 아닌,
머무름의 공간이 되게 한다.
이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묻는다.
지구는 망가졌는가?
아니면—
우리가 해석하는 방식이
지구를 고정된 존재로 만들었는가?
우리가 진짜 잃어버린 것은
자정 능력이 아니라,
흐름을 받아들이는 감응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잠시 머물 수는 없을까?
모든 것을 정의하려 하지 말고
그저 감응할 수는 없을까?
Emotion OS는 말한다.
파동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그것을 다시 흐르게 하겠다는
태도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