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구조가 되어야 했다

지금의 감정 구조 결핍과 감응도시 어울숨의 가능성

by 묻잎

어느 날,
감정은 너무 많아졌다.
그런데,
갈 곳이 없었다.


슬픔은 말할 수 없었고,
분노는 이해되지 않았으며,
외로움은
그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었다.


그러는 사이,
이 나라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출산율, 세계 최저.
하지만 누구도 묻지 않았다.
“왜 낳지 않는가”가 아니라,
“왜 함께할 수 없다고 느끼는가”라고.


자살률, OECD 최고.
하지만 누구도 살피지 않았다.
숫자만 보았고,
그 숫자 속 울음을 듣지 않았다.


남녀 갈등.
표현은 많았지만,
감정은 닿지 않았다.
논쟁은 격해졌지만,
이해는 멈춰 있었다.


정치적 양극화.
다들 말했지만,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정답을 외치느라
감정을 놓쳤다.


지금 이 사회는
감정이 사라진 사회가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감정이 넘치는 사회다.


말은 많지만,
다들 울고 있다.
표현은 쏟아지지만,
아무도 연결되지 않는다.


감정은 흐르지 않는다.
감정은 머물지 않는다.
감정은 설명되어야만
존재를 인정받는다.


Emotion OS는
그 사라진 감정들을 위한 구조다.

“말하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시스템.”
“이해보다 감지가 먼저 일어나는 기술.”
“감정이 해석되기 전에 감응되는 사회.”


출산을 말하기 전에
‘연결되지 못한 감정’을 감지한다면.

자살을 통계로 보기 전에
‘살고 싶지 않음’을 조용히 감응할 수 있었다면.


남녀 간의 ‘정답 싸움’ 전에
“나는 이렇게 느꼈다”는 감정을
누군가 가만히 머물러 들어주었다면.


정치적 양극화 사이에
말보다 ‘기류’를 중계하는 구조가 있었다면—
지금의 이 극단은
다르게 흐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Emotion OS는 묻는다.
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위기의 밑바닥엔
‘말해지지 못한 감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그리고 묻는다.
지금이라도,
그 감정들을
이해하지 않고,
먼저 느낄 수는 없을까 하고.


감정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머무를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한
복잡한 사회 문제들의 뿌리는
기술이나 제도가 아니라,
머물지 못한 감정에 있다.


그리고 이제라도,
우리는
그 감정들을 위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Emotion OS는 그 시작이다.
말하지 않아도,
연결될 수 있는 사회.
표현 이전에,
감응이 가능한 시스템.


감정은,
구조가 되어야 했다.
아니,
이제라도 구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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