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 6개월 1년 10년이 지나도 심장이 쪼그라드는 노예들을 위한 위로
스물하나.
나는 그 나이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 기나긴 시간 동안 프리랜서로도 이런저런 일들을 했고, 회사에서도 노예로 오만가지 일을 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뭘 잘못했나?', '내가 잘못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건가?' 등등의 자책이었다. 라디오 방송 작가 일을 할 때는 청취자 문자 하나에 '하.. 글을 잘못 쓴 건가.. 팩트 체크가 안 된 건가.. 하.. 난 왜 이러지..' 생각했고, 회사 일을 하면서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도 머리 끝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식음을 전폐한 채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회사에 피해를 입히면 안 돼..' 생각했다.
물론, 어쩌다 아직까지 노예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방귀 좀 뀔 나이와 직급과 책임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내외 많은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와 숨으로 분위기를 파악하고 나를 죄인으로 만들곤 한다. 다만 그 강도가 좀 덜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일할 때야 섬세한 게 좋지만, 가끔은 섬세함 따위 개나 줘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회 초년생이라면, 또 아직 회사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그렇다고 생각하는) 일꾼들이라면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하루에도 몇 번씩 '또 내가 잘못했어... 어떡하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 등을 토닥이며 말해주고 싶다.
"네 잘못이 아니야."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실수들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 어느 하나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이 없기 때문에 컴퓨터처럼 척척 일을 처리해 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심지어 컴퓨터도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가. 챗GPT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불편한 골짜기'가 가득한 그림을 자랑스레 선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 완벽해 보이는 AI도 모르는 게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물며 우리는 AI도 아니지 않은가. 당연히 실수는 할 수 있다.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데이터를 쌓고 응용하며 진화할 뿐이다. 단지 우리에겐 시간이 조금 적었을 뿐이다. 회사에 그리고 일에 적응할 시간, 일을 완벽히 해낼 능력을 갖출 시간 말이다. 그러니 자책할 필요 없다. 게다가 당신에겐 책임을 지라고 당신의 위에 군림하는 상사가 있지 않은가.
물론 상사가 책임지기 어려운 예외의 상황도 있다. 상사에게 컨펌을 받지 않고 일을 진행했을 때에는 당연히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컨펌이란, '나는 이걸 확인받았으니 허락한 당신이 책임을 지는 거예요.'의 준말이다. 그러니 책임을 떠넘기고 싶으면 제발 확인을 받았으면 한다. 광고 속 '하고 싶은 건 다 해!'와 같은 문구는 사실은 '(책임을 질 수 있다면) 하고 싶은 건 다 해'라는 걸 부디 기억했으면 한다.
아, 물론 나는 속이 좁은 편이기 때문에 '네 잘못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은 경우도 있다. 실수를 해 놓고도 뻔뻔한 태도로 응수하는 인턴 혹은 사원이 있을 경우다. '죄송합니다'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해맑게 웃으면서 칼퇴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자기 할 일은 제발 다 하고 퇴근해라. 그리고 실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도 좀 기울여라. 처음 하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그냥 엿이나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아니, 그러고선 어떻게 연봉 높일 생각을 하는 건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실수는 용인할 수 있지만 조직 사회에서 예의 없음은 도저히 용인할 자신이 없다. 실수였으나 본인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으니 함께하는 태도를 보여라. 제발.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1. 회사 일은 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2. 책임져 줄 상사가 있음을 잊지 마라. (상사가 '네 잘못이지~'라고 떠넘길 땐 상사가 미친놈이거나 니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니 이직할 준비를 하자)
3. 모든 일을 저지르기 전에 상사/클라이언트의 컨펌은 필수다.
4. 실수할 수 있으나 실례하지는 말자. 너에게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
쪼그라드는 소생들을 위로하고 싶었으나 나를 스쳐간 무수히 예의 없는 직원들을 떠올리며 결국 꼰대화되어 글을 마무리한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꼭 말해주고 싶다. 울며불며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더러운 회사도 이겨내면 결국 승자가 된다. ← 이건 꼰대어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당신을 짓밟는 회사라면 반드시 1도 망설이지 말고 사직서를 던져라. 받아줄 회사가 없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세상은 넓고 회사는 많다. 정 없다 싶으면 니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길은 회사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