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그릇이라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건물과 도로, 광장 같은 정적 밀도의 대상이 그릇의 단단한 형태라면, ‘기능적 밀도(Functional Density)’는 그 안에 담기는 내용, 즉 우리의 삶 그 자체에 관한 것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하게 빚어진 그릇이라도 그 안에 담긴 음식이 부실하면 식사가 즐겁지 않듯, 도시 공간의 가치 역시 그곳이 실제로 어떤 목적으로 쓰이고 사용되는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릇의 크기나 모양에 압도되어, 정작 그 안에서 어떤 삶이 영위되고 있는지를 놓치곤 합니다.
공간의 쓰임새를 결정하는 방식은 그 시대가 가진 도시의 고민을 투영해 왔습니다. 20세기 초반, 매연과 소음이 뒤섞인 산업화 시대의 혼잡한 도시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도시의 기능을 명확히 나누는 것을 이상향으로 꿈꿨습니다. “잠은 조용하고 쾌적한 곳에서 자고, 일은 효율적인 곳에서 집중해서 하자.” 이 명쾌하고 합리적인 논리는 주거지역, 업무지구, 공업지역을 칼로 무 자르듯 나누는 ‘용도 분리(Zoning)’의 문법을 탄생시켰습니다. 당시로서는 그것이 무질서와 비위생이라는 도시의 질병을 치료하는 가장 확실한 처방전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도 덕분에 우리는 쾌적한 아파트 단지와 거대한 오피스 타운을 얻었습니다. 기능적으로 순수한 공간들은 관리하기 쉽고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감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효율적으로 정돈된 신도시는 깔끔하지만, 어쩐지 조금 심심하고 차가운 느낌을 줍니다. 낮에는 텅 빈 주거지, 밤에는 텅 빈 업무지구. 기능의 분리는 공간의 효율을 높였을지 모르지만, 삶의 시간을 파편화시키고 거리에서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활력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반면, 누군가 본능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오래된 도심의 거리들을 떠올려 볼까요? 1층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2층 디자인 사무실의 분주함, 그리고 그 위층 가정집의 평온함이 한 건물 안에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가 주창했던 이 ‘용도 혼합(Mixed-use)’의 풍경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만듭니다. 빵을 사러 나왔다가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퇴근길에 동네 서점에 들르는 우연한 마주침들이 일상을 다채롭게 채웁니다. 도시 기능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을 때, 도시는 단순한 생존의 공간을 넘어 풍요로운 경험의 장소로 변모합니다.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과 같은 학자들은 이러한 혼합이 주는 가치를 ‘열린 도시(Open City)’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도시의 기능이 고정되지 않고 섞여 있을 때, 우리는 나와 다른 타인을 마주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업무 지구의 직장인과 동네 주민이, 혹은 예술가와 상인이 한 공간에서 섞일 때 사회적 복잡성이 증가하고, 이는 도시가 가진 포용력과 창의성의 원천이 됩니다. 서로 다른 기능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경계선에서 도시의 새로운 문화가 싹트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섞이는 것’만이 무조건적인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뒤섞인 고밀도 복합 공간은 활기차지만, 때로는 감각적으로 피로합니다. 소음과 빛 공해, 프라이버시의 침해는 혼합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그림자입니다. 때로는 철저히 분리된 저밀도 전원주택지의 고요함이 우리에게 깊은 휴식을 주고, 오직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격리된 업무 지구나 연구 단지의 긴장감이 혁신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도시는 활력과 휴식, 개방과 은둔, 혼합과 분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도시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기능들을 격리해 온 것은 아닌지, 그래서 삶의 연속성을 끊어놓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일입니다. 집에서 일터까지, 일터에서 여가 공간까지 이동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게 함으로써, 정작 공간을 향유할 여유를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최근 주목받는 ‘N분 도시’와 같은 개념들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잃어버린 기능적 혼합을 복원하여 삶의 동선을 다시 인간적인 스케일로 되돌리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계획가가 의도한 쓰임새와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실제 쓰임새가 종종 엇갈리기도 합니다. 도시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시선처럼, 지도 위에 그려진 ‘구상된 공간(Representations of Space)’은 시민들의 삶이 녹아든 ‘체험된 공간(Representational Spaces)’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쇠락한 공장 지대가 힙한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변신하거나, 널찍한 대로변보다 비좁은 뒷골목 상권이 더 뜨거워지는 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도시의 기능은 책상 위 도면이나 법규가 아니라, 사람들의 발길과 욕망, 그리고 일상의 실천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기능적 밀도를 읽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간판이나 건물의 용도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 벌어지는 행위의 중첩을 관찰하는 일입니다. 어떤 동네는 낮에는 조용하다가 밤만 되면 깨어나고, 어떤 건물은 주중에는 전쟁터 같다가 주말이면 텅 빈 껍데기가 됩니다. 이처럼 공간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흔들리고 변화합니다. 우리는 이 유동적인 흐름 속에서, 내 삶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절한 밀도의 그릇은 어떤 모양일지, 그리고 나는 그 그릇을 어떤 내용으로 채우고 싶은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