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공간은 3차원의 부피, 즉 가로, 세로, 높이를 가진 물리적 실체로 인식합니다. 하지만 도시라는 공간이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라는 4번째 축이 필요합니다. 같은 장소라도 시간에 따라 그곳을 채우는 공기의 밀도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침 9시의 강남대로와 새벽 3시의 강남대로는 물리적으로는 같은 공간이지만,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세계나 다름없습니다. 마치 마법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의 밀도는 수축하고 팽창하며 전혀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시공간의 집중과 분산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도심의 업무 지구(CBD, Central Business District)입니다. 평일 낮, 이곳은 효율성의 거대한 용광로입니다. 수만 명의 인재와 자본, 정보가 좁은 공간에 압축되어 뜨거운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이때의 극도로 높은 기능적 밀도는 도시의 생산성을 지탱하는 강력한 엔진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은 모여서 회의하고, 경쟁하고, 협력하며 집적의 이익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해가 지고 퇴근 시간이 지나면 상황은 반전됩니다. 그 뜨겁던 에너지는 썰물처럼 도시 외곽의 주거지로 빠져나갑니다. 주말의 텅 빈 오피스 거리는 거대한 빌딩들의 숲이 되어 기묘한 적막감마저 자아냅니다. 도시계획 분야에서는 이를 두고 ‘도심 공동화’라 부르며 공간의 낭비나 활력 저하로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도시가 숨을 고르는 필수적인 휴식의 리듬일지도 모릅니다. 특정 시간에 자원을 집중 투입해 효율을 극대화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도시의 에너지를 다른 곳(가정, 여가)으로 분산시키는 거대한 순환의 일부인 셈입니다.
반대로, 주거와 상업, 문화 기능이 적절히 섞여 있는 동네는 24시간 은은한 온기를 유지합니다. 아침 출근길의 분주함이 지나가면 점심시간의 활기가 찾아오고, 오후에는 하교하는 학생들과 장을 보는 주민들이, 저녁에는 퇴근 후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바통을 이어받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공간을 시차를 두고 점유할 때, 공간의 활용도는 극대화되고 거리는 24시간 내내 자연스러운 감시가 이루어지는 안전한 장소가 됩니다.
‘크로노 어바니즘(Chrono-urbanism)’이라는 다소 낯선 용어는 바로 이 지점을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프랑스의 지리학자이자 도시 이론가인 뤼크 귀아지디(Luc Gwiazdzinski) 등이 주창한 이 개념은, 도시를 더 이상 단순히 정적인 '공간(space)'의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시공간(space-time)'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접근 방식입니다. 건물만 지어놓을 것이 아니라, 24시간 운영되는 도서관이나 시차 출퇴근제처럼 시간의 밀도를 분산시키는 소프트웨어가 함께 설계될 때 도시의 삶은 더욱 윤택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도시의 밤은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으로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낮 동안 평범한 시장이었던 곳이 밤이 되면 화려한 야시장으로 변신해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늦은 밤까지 문을 열어 퇴근 후의 직장인들을 맞이합니다. 낮의 생산적인 도시와는 또 다른, 밤의 소비적이고 문화적인 도시가 깨어나는 것입니다. 런던이나 암스테르담 같은 도시들이 ‘야간 시장(Night Mayor)’을 임명해 밤의 경제를 관리하는 것은, 한정된 공간 자원을 시간이라는 축으로 확장하여 두 배로 활용하려는 지혜로운 전략입니다.
하지만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은 법입니다. 24시간 깨어있는 도시는 편리하고 화려하지만, 필연적으로 갈등을 잉태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밤의 축제가 인근 거주자에게는 고통스러운 소음과 빛 공해가 됩니다. 또한, 우리의 편리한 새벽 배송과 심야 서비스 뒤에는 누군가의 건강을 담보로 한 밤샘 노동이 숨어 있습니다. 낮의 기능과 밤의 기능이 충돌할 때, 도시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는 정치적인 공간이 됩니다. 수면권과 영업권, 휴식과 노동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은 시간의 밀도를 다루는 도시의 중요한 숙제입니다.
우리는 도시 안에서 각기 다른 속도와 리듬으로 살아갑니다. 어떤 공간은 스타카토(Staccato)처럼 빠르고 강렬하게 기능을 수행해야 하고, 어떤 공간은 레가토(Legato)처럼 부드럽고 느리게 흘러가야 합니다. 획일적인 리듬을 강요하는 도시는 숨 막히지만, 다양한 시간의 결이 공존하는 도시는 숨 쉴 틈을 줍니다. 번화가의 24시간 편의점 옆에 일찍 문을 닫는 고즈넉한 서점이 공존할 수 있는 다양성이야말로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입니다.
도시의 시간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이 지금 하루 중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 살피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의 생체 리듬과 도시의 리듬이 얼마나 조화롭게 맞물리고 있는지, 혹은 삐걱거리고 있는지 감각하는 일입니다. 도시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의 표정은 몇 시의 얼굴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