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와 정박자 사이, 도시의 앙상블

by 문지훈 Jihun Mun

지금까지 우리는 도시라는 복잡한 텍스트를 읽어내기 위해 세 가지 안경을 번갈아 써보았습니다. 도시의 뼈대와 형태를 이루는 물리적 환경의 집적과 분산을 보여주는 ‘정적 밀도’, 그 사이를 흐르는 사람과 사물의 움직임을 살펴보게 해 준 ‘동적 밀도’, 그리고 공간을 채우는 실제 활동과 목적을 의미하는 ‘기능적 밀도’. 각각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도시의 모습은 안경 하나만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 층위의 지도가 겹쳐질 때, 그리고 그 겹쳐진 지점들이 서로 딱 맞아떨어지거나 혹은 묘하게 어긋날 때 도시의 본질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 밀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 도시는 정박자의 리듬을 타며 놀라운 시너지를 냅니다. 오래된 도심의 활기찬 골목길을 예로 들어볼까요? 걷기 좋은 좁은 길과 인간적인 스케일의 건물들(높은 정적 밀도)이 있기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고(높은 동적 밀도), 그 풍부한 흐름 덕분에 개성 있는 가게와 문화 공간들이 생존하며 다채로운 활동(높은 기능적 밀도)을 피워냅니다. 이것은 누가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쳐 사용자와 공간이 서로 적응하며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앙상블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도시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반면, 우리를 불편하게 하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공간들은 대개 이 밀도들 사이의 엇박자, 즉 불일치(Mismatch)에서 비롯됩니다. 웅장하게 지어놓은 랜드마크 건물이 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물리적인 그릇은 거대하고 화려하지만(낮은 정적 밀도),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콘텐츠가 부족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고(낮은 동적 밀도), 결과적으로 아무런 활동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낮은 기능적 밀도)입니다. 흔히 하얀 코끼리라고 불리는 이런 공간들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은 텅 빈, 뼈아픈 불일치의 현장입니다.


또 다른 형태의 엇박자도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 환승 통로처럼 사람들의 흐름은 폭발적으로 높은데, 정작 그곳에서 머무를 수 있는 활동은 전무한 경우입니다. 그저 서로 부딪히지 않기 위해 빠르게 스쳐 지나가야 하는 삭막한 통로일 뿐이죠. 흐름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공간에서 우리는 피로감을 느낍니다. 반대로, 낡은 주거지역이 갑자기 핫플레이스가 되어 몰려드는 인파를 감당하지 못해 하수도가 역류하거나 소음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도시의 문제들은 밀도가 단순히 높고 낮아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의 밀도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삐걱거릴 때 발생합니다.


물론 때로는 의도적인 비움과 어긋남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도심 속 고요한 공원이나 사색을 위한 산책로는 물리적 공간은 잘 갖춰져 있지만, 사람들의 흐름을 적절히 조절하고 상업적 기능을 배제함으로써 휴식이라는 고유한 가치를 지켜냅니다. 만약 이곳까지 시장통처럼 붐빈다면 그 공간은 본연의 매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좋은 공간이란 무조건 밀도가 높은 곳이 아니라, 그 공간이 지향하는 목적에 맞는 적절한 형태와 흐름을 갖춘 곳, 즉 격이 맞는 곳입니다.


도시를 계획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이 엇박자를 편안한 정박자로, 혹은 매력적인 변박자로 조율해 가는 과정입니다. 단순히 용적률을 높여 건물을 크게 짓는 공학을 넘어, 그곳에 어떤 삶을 담을 것이며 사람들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흘러들게 할 것인지를 입체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물리적인 뼈대는 한번 세우면 바꾸기 어렵지만, 그 안의 기능과 흐름은 유연하게 변합니다. 따라서 좋은 도시는 단단한 뼈대 위에 유연한 살과 피가 돌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둡니다.


이 세 가지 차원의 밀도는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새로운 지하철역이 생겨 사람들의 흐름(동적 밀도)이 바뀌면, 주변의 상권(기능적 밀도)이 꿈틀대고, 결국에는 낡은 건물이 새 건물로 재건축(정적 밀도)되는 변화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혁신적인 건축물 하나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도시를 읽는다는 것은 이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놀이와도 같습니다.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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