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보다 화면, 상업의 무게중심 이동

by 문지훈 Jihun Mun

도시의 상업 공간을 지배하던 성공의 방정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좋은 가게의 필수 조건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길목, 눈에 잘 띄는 간판, 그리고 널찍하고 쾌적한 매장을 꼽았습니다. 소위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은 사업 성공의 보증수표와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거리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이러한 전통적인 믿음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번화가 대형 상가의 유리창에는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는 반면, 인적 드문 뒷골목의 간판 없는 가게 앞은 배달 오토바이와 대기하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기현상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도시 상업의 무게중심이 물리적 거리인 스트리트(Street)에서 스마트폰 속 스크린(Screen)으로 이동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방송이나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식당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올려 보면 이 변화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지도 앱을 켜고 찾아간 곳은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상권과는 거리가 먼 외진 골목이나 건물의 지상층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밖에서는 내부가 잘 보이지도 않고 화려한 호객 행위도 없습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밖의 정적과는 대조적으로 주방은 쉴 새 없이 울리는 주문 알림음과 포장 용기를 정리하는 손길로 분주합니다. 이 가게의 진짜 영업 장소는 이 좁은 골목이 아니라, 수백 어쩌면 수천 명 이상의 잠재 고객이 접속해 있는 배달 앱의 메인 화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영업자들에게 물리적인 주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 주소입니다. 아무리 비싼 임대료를 내고 대로변에 가게를 열어도, 플랫폼의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되지 않거나 긍정적인 리뷰가 쌓이지 않으면 고객의 선택을 받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물리적 입지가 다소 불리하더라도 디지털 세계에서의 평판과 접근성을 확보한다면, 그곳은 순식간에 문전성시를 이루는 핫플레이스가 됩니다. 상업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눈에 보이는 흐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흐름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요식업을 넘어 소매업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패션이나 잡화 브랜드들에게 오프라인 매장의 의미는 과거와 사뭇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매장이 물건을 진열하고 판매하여 수익을 올리는 기능적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고객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쇼룸(Showroom)의 성격이 강해졌습니다. 고객들은 매장에서 제품을 입어보고 만져보지만, 실제 구매는 더 저렴한 가격이나 쿠폰 혜택을 제공하는 온라인 스토어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들 역시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며 매장 수를 늘리기보다, 핵심 지역에 상징적인 매장 하나를 잘 꾸며놓고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는 효율적인 전략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은 도시의 자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도시 계획가나 건물주가 상권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지금은 거대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어떤 가게를 사용자에게 먼저 보여줄지, 배달료를 어떻게 책정할지, 어떤 리뷰를 상단에 띄울지에 따라 상권의 지도가 실시간으로 바뀝니다. 즉, 도시 공간의 이용 패턴이 공공의 계획이나 자연스러운 시장의 논리보다는 플랫폼 기업의 이윤 추구 방식과 기술적 설계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커졌음을 의미합니다.


상업의 중심축 이동은 물리적 도시의 풍경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통적인 가로 상권의 약화입니다. 온라인 쇼핑과 배달이 일상화되면서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먹기 위해 굳이 거리로 나와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도심 상가의 공실률 증가로 이어지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흐름을 감소시켜 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1층 상가가 비어 있는 거리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보행자에게 불안감을 주고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사회적 문제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도시의 이면도로와 골목길은 새로운 물류의 현장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배달 효율성이 중요한 배달 전문점이나 소규모 물류 창고들은 임대료가 저렴하고 오토바이 접근이 쉬운 주거지 인근이나 이면도로를 선호합니다. 이로 인해 조용했던 주택가 골목이 배달 오토바이들의 통로가 되면서 소음이나 안전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도시가 보행자의 걷는 속도가 아니라, 배송의 효율성과 속도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눈으로 보는 도시의 활력과 실제 경제적 활력 사이에 거대한 괴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겉보기에는 한산해 보이는 거리가 사실은 엄청난 주문량을 처리하는 디지털 상업의 최전선일 수 있고, 반대로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가 실제로는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 속 빈 강정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거리를 걷는 사람의 수나 건물의 규모만으로는 그 지역의 가치를 온전히 평가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의 주도권 다툼 속에서 도시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공간은 물건을 파는 곳에서 경험을 파는 곳으로 진화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으며, 디지털 공간은 그 경험을 확산시키고 실제 거래를 성사시키는 핵심 통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머무는 밀도, 흐르는 밀도, 쓰이는 밀도라는 가시적 차원의 관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 보이지 않는 힘의 실체를 우리는 ‘디지털 밀도’라는 새로운 안경을 통해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 도시의 복잡한 층위를 이해하는 네 번째 렌즈입니다.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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