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 사회는 ‘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부지런히 나아왔습니다. 더 높은 빌딩, 더 넓은 도로, 더 많은 아파트. 도시의 규모를 키우는 것은 진보의 증거이자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도시는 더 많은 인구와 자본을 효율적으로 담아내는 그릇의 역할을 부여받았고, 그 효율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가 바로 ‘밀도(密度)’였습니다. 한정된 공간에 사람과 기능을 얼마나 집약시킬 수 있는지가 도시의 경쟁력이자 미래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 강력했던 성공 공식은 한 시대의 분명한 성취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도시 곳곳에서는 이 공식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환의 시대를 맞아, 우리가 도시를 이해해 온 익숙한 방식에 새로운 질문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도시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저는 이 변화의 의미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도시를 이해하는 우리의 시야를 넓히기 위한 새로운 언어를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작은 기존의 ‘밀도’ 개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그 다차원적 의미로 확장하는 일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적어도 세 개의 거대한 물결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구 구조의 변화’라는 조용한 물결입니다. 과거 성장의 시대는 인구 증가를 당연한 전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습니다. 도시를 채우던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공간의 쓰임새 또한 달라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변화가 모든 지역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수도권과 일부 거점 도시로의 인구 집중은 여전하지만, 다수의 지방 중소도시는 인구 유출로 인한 소멸 위기를 거론할 만큼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보입니다.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할 것인가?’라는 과거의 질문에 더해, 이제 우리는 ‘성장이 둔화된 도시에서 어떻게 삶의 질을 유지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이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인구수 너머에서 새롭게 정의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두 번째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물결입니다. 이 물결은 도시의 기능과 물리적 공간 사이의 익숙했던 관계를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일과 쇼핑, 학습과 교류 등 도시의 핵심 기능들은 더 이상 특정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네트워크를 통해 유연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리적 위치, 즉 ‘입지’의 중요성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중요성이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제 좋은 상권이란 단순히 유동 인구가 많고,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곳이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에서 상위에 노출되고 긍정적인 평판을 얻은 곳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도시 계획의 전통적인 전제였던 ‘입지’의 중요성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도시의 활력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움직임만으로 측정될 수 없는 시대,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도시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를 넓혀야 합니다.
세 번째는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과제입니다. 성장의 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콘크리트와 자동차, 대량 소비 기반의 도시 시스템은 이제 우리에게 지속가능성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해법의 일환으로 ‘압축 도시’와 같은 개념이 주목받고 있지만, 단순히 건물을 높고 빽빽하게 짓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신중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가령 잘 계획된 신도시의 고층 아파트 단지는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해 출퇴근 시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가구가 소비하는 막대한 생활 에너지와 24시간 가동되는 물류·배달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탄소 발자국을 낳기도 합니다. 즉, 도시의 물리적 형태뿐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에너지 소비와 자원의 흐름까지 고려하는 입체적인 접근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세 가지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도시를 재단해 왔던 ‘인구÷면적’이라는 익숙한 ‘잣대’는 그 한계를 보입니다. 이 기준으로 인구 감소 지역을 보면 ‘소멸’이라는 단편적 현상에만 주목하게 될 수 있고, 텅 빈 상점가를 보면 ‘불황’이라는 표면적 진단에만 머무를 수 있습니다. 마천루를 보며 ‘효율성’을 떠올리지만, 그 이면의 에너지 소비는 간과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낯설다고 느끼는 도시의 여러 현상은, 어쩌면 도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측정 도구가 현실의 복잡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시를 보는 새로운 ‘언어’이자, 더 정교한 ‘관점’입니다. 도시를 단순히 물리적인 건물과 인구의 집합체로 보는 시선에서 나아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활동과 관계, 보이지 않는 흐름과 축적된 기억까지 아우르는 입체적인 시선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도시의 시민으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온전히 누릴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일상의 배경이 되는 도시 공간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언어는 무엇보다 우리가 도시와 맺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우리의 일상을 이전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경험으로 채워줄 것입니다. 도시를 다차원적으로 이해하게 될 때, 매일 지나치던 무심한 풍경은 비로소 우리에게 생생한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도시의 거대한 ‘흐름’을 느끼고, 단골 카페에서는 이웃과 느슨한 ‘관계’가 주는 안온함을 발견하며, 낡은 건물에서는 그곳에 쌓인 ‘기억’의 무게를 짐작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워 세상이 더 넓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도시를 깊이 읽어내는 시선은, 익숙했던 공간에서 매일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삶의 기쁨을 선사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깊은 이해는 단순히 개인의 풍요로움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상상력의 출발점이자, 도시를 살아가는 현실적인 지혜로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왜 어떤 상권은 활기를 띠고 어떤 곳은 침체하는지, 왜 어떤 동네는 따뜻하고 어떤 동네는 삭막한 지를 표면적인 현상 너머에서 파악하게 됩니다. 도시의 숨겨진 잠재력과 위험을 남들보다 먼저 읽어내는 이 안목은, 자연스럽게 도시 안에서의 삶과 일에 대한 더 나은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다차원적 도시 밀도’라는 화두를 꺼내 든 이유입니다. 앞으로의 여정은 이 주제에 대한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도시라는 공간을 함께 더 깊이 이해하고 성찰하기 위한 지적인 탐색에 가깝습니다. 도시가 어떻게 머무르고(정적 밀도), 어떻게 흐르며(유동적 밀도), 어떻게 쓰이고(기능적 밀도), 나아가 어떻게 연결되고 기억되는지(관계·경험·기억의 밀도) 등에 대한 다채로운 질문을 통해, 익숙했던 도시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