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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고 심심하고 슬픈 냄새.

가끔 떠올리는 기억

by 비밥

기억의 선명도를 자극하는 것.




가을, 겨울이면 유독 맛있는 냄새가 기억을 움직인다. 몸이 움츠러들면 후각이나 청각이 더 살아나는 건지 잰걸음으로 지나치다가도 길거리 어묵 냄새나 식당 앞 사람들의 오늘에 메뉴 실랑이를 흘려버릴 수가 없다. 기억도 마찬가지. 귓불을 스치고 가는 바람에서 익숙한 냄새가 느껴지면 어느새 기억은 바람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기억도 허기를 느끼는 걸까. 어떨 땐 친구들과 양껏 수다를 떨어야 하거나 먼지 쌓인 앨범 여러 권을 뒤져야 채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세월 따라 더 흐려지는 건 눈보다 기억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필연 관계일지도 모른다. 멀리 또렷이 내다보다 어느새 찬찬히 앞을 살피더니 이젠 뒤를 되돌아볼 때가 됐으니까. 의도했든 아니든 줄어든 기억을 채울 필요는 있어 보인다. 치매 예방쯤으로 해두자.


많은 기억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반가운 나를 찾고, 미운 나를 보게 되지만 허기를 채우기가 여전히 버겁다. 술래가 나 혼자라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 숨어야 숨바꼭질도 재밌는 거니 잊고 지낸 기억을 찾아내는 맛도 나름 나쁘지 않다. 그저 파닥파닥 떠오르지가 않아 명상 같은 고뇌를 거쳐야 해서 아쉬울 뿐이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고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 게 삶이라던데 어째선지 갈수록 감정은 로봇으로 행동은 절제로 치우쳐 간다. 시간의 거리가 멀수록 기억의 당김이 힘든 이유는 감정의 고리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감정을 희석시킨다고 수 있다. 내 경우 이것이 외로움 때문이라면 딱히 부정하진 못할 것 같다. 함께하면 배가 되는 건 기쁨만이 아니니까. 기억과 감정의 선명도는 서로 공유함으로써 높아지는 거니까. 혼자 용써봐야 역시 고광렬 밖엔 안 되는 거지.

'가만있어 보자..'


그래서 기억에 선명도를 자극할 매개체가 필요한데 냄새는 적당한 스위치가 되어준다. 후각과 기억을 처리하는 뇌의 영역이 같아 뇌에 각인된 냄새가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지금 연애 중이라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낯선 여자에게서 전 여친의 냄새가 흘러간다면 기억도 후딱 흘려버려야 한다. 멈칫하는 순간 여자는 안다. 이 새끼가 뭘 추억하는지.



아는 맛보다 무서운 건 역시 아는 냄새.




계절마다 불어오는 익숙한 바람 냄새는 어느 정도 기억의 허기를 채워준다.


'푸르스트 현상'
: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냄새에 자극받아 기억하는 것


똑같은 김치찌개인데 어릴 때 작은 상에 둘러앉아 먹던 찌게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때때로 드라마에서 우리 집과 비슷한 쪽방이 그려지면 장판 한 귀퉁이 쿰쿰한 냄새가 번뜩 치고 오기도 한다. 어찌 보면 퍼스널컬러 같은 기억이지만 냄새로 각인된 기억은 미묘하게 들어맞는 갖은 조건들이 비벼져야 램프의 지니처럼 뿅 하고 떠오르게 된다.


익숙한 가을 냄새인데 오늘따라 멈칫하게 하는 바람. 늘 스쳐가는 길 옆 공기에서 오버랩되는 학창 시절에 순간.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소환된 소개팅의 진한 모카향. 무심코 닦은 티슈에 담긴 어린 날 첫사랑의 비누향. 아련한 어떤 날이 떠오르는 시장 골목 튀김 냄새. 오랜만에 꺼낸 이불에서 스쳐간 할머니와의 대화.

음악처럼 특정 노래나 음에 따라 추억의 소환이 빠르지도, 사진처럼 무지개다리로 가버린 백구를 추억하며 울컥거리지도 못하지만, 냄새로 저장되는 기억의 공간은 생각보다 넓고 다채롭다. 그날의 온도, 습도, 빛, 바람 등 미묘하게 들어맞는 조건들이 휙 하고 냄새와 섞일 때면 마치 잊어버렸던 비상금을 획득하는 묘한 반가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목욕하는 날.




난 제법 옛날 사람이다. 기억 절반 정도는 사진 없이 떠올리기 버겁다. 어떨 땐 기억에 없는 사진이 존재하고 같은 사진에 다른 기억을 지껄일 때도 있다. 나이 탓도 있겠으나 우선인 것들에 치이고 밟혀 낯설어진 탓도 있다. 코피까지 간 코딱지 놀이나 동네 미친개와의 목숨을 건 추격전 등을 빼면 일상의 반복적인 평범한 기억들은 조립할 조각도 따로 떠올릴 이유도 별로 없다. 얼핏 봐선 목욕도 비슷할 것 같은데 똑같은 패턴 비슷한 대화여도 그때그때가 기억도 냄새도 다 다르고 생생하다.


목욕하는 날은 기억 포만도가 높다. 해봐야 불리고 밀고 말해봐야 "냉탕", "온탕" 뿐이지만, 한숨에 들이켰던 바나나맛 음료도 민폐 가득인 올림픽급 수영놀이도 날고 기는 여타 기억보다 어째 더 선명도가 높게 다가온다. 아빠를 따라 목욕탕을 다니기 전까진 부엌 한 편에 큰 고무대야를 두고 동생과 내가 불리고 밀고를 번갈아 했다. 엄마는 뜨거운 물을 계속 끓여내 섞고 우리는 숨도 안 쉬고 놀기 바빴다. 놀거리에 목마른 시절이라 목욕은 제법 상급 놀이에 들어갔지만 그때마다 상전에 준하는 치다꺼리는 엄마 몫이었다. 어쩌다 아빠에게 맡겨질 때면 그날은 영 노는 맛이 나질 않았다.


아버지가 되었다. 아들과 목욕탕에 얽힌 기억은 없다. 섬머슴 같은 면이 조금 있지만 외동딸뿐이라 방문이 닫혀 있다면 접근도 조심스럽다. 공교롭게도 중학생인 탓에 감정을 해할 수 있는 경솔한 언행은 자제하며 살아간다. 애교가 많아 더러 안아주기도 기분 따라 뽀뽀를 날리기도 하나 '시원하다'는 열탕 거짓말은 날릴 기회가 없다.


비밥.



반갑고 심심하고 슬픈 냄새.




일곱 살쯤 되었던 주말쯤 아침.

건조한 얼굴에 느껴지는 촉촉함. 탕 안 가득 찬 따뜻한 공기. 무인도 섬 같던 나무 평상. 꾹꾹 눌러짜던 일회용 샴푸. 지금도 또렷한 싸구려 비누향. 따끔한 중독성의 목욕탕 스킨로션. 동생과 나누어 마시는 바나나맛 우유. 아빠는 박카스. 작은 평상 앞에 놓인 tv. 중계는 씨름. 기억은 사진 같고 냄새는 현실 같다.


특별할 것 없는 습관 같은 오늘.

익숙한 무료함. 약간의 피곤함. 무심코 집어든 비누와 잠깐의 정적. 재미없는 샤워는 억지로, 야근 같은 뒤처리는 의무로. 상쾌하지만 무채색 같은 시간.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으나 이맘때쯤이면 늘 한 번씩 치고 오는 기억이 있다. 샤워를 마치고 차가운 거실 냄새와 함께 스쳐가는, 장소도 시간도 매번 다르지만 같은 곳 같은 날인 잊고 있던 어떤 날이고 기억이다. 왜 이런 축축한 느낌이 드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지금은 반갑고 심심하고 슬픈 냄새가 되어버린. 그 정도가 되어버린 기억으로 느껴진다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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