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짜파게티범벅'이란 이름으로 한 종류만 판매되지만 시작은 삼총사였다. 짜장범벅, 카레범벅, 케첩범벅. 요 작은 녀석들이 출시될 때 처음엔 좀 의아했는데, 한 끼 대용인 라면치고는 너무 작고 맛 또한 기존과는 확연히 달라서였다. 컵라면에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앙증맞은 면발에 수프가 뿌려진 마치 과자 같은 라면이었다. 그래선지 학교 앞 문방구에서 많이 팔려나갔는데, 유독 바스락거리는 식감에 짭조름한 맛이 있어 일부러끓여 먹지 않고 씹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난 케첩이 좋았다.
오락실에서 캐릭터를 고를 때도 모처럼 장난감을 사러 갈 때도 인기 없이 밀려난 관심 밖의 녀석들을 고르곤 했는데, 특이성향인지 애정결핍인지 반항심인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어쩌면 관심받고 싶은 욕구를 대상에 투영한 애정결핍적 선택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경험한 맛들을 섞는 거라면 상상하는 맛도 어느 정도 타당한 맛이 예측된다. 케첩은 아무래도 짜장이나 카레에 비해 라면과 접목이 어색했을 테니 합리적 선입견이 소비를 끌지 못했을 거다.관능 비교까지도 필요 없다. 이래저래 맛도 잘 상상이 안되고그냥 이미지에서 까이는 정도랄까.
시작은 관심에서 밀려난 케첩이 불쌍해서.
측은지심이 관심으로 관심이 애정으로 가기까진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그냥 맛있었으니까. 까이는 이유가 의아할 정도로 입맛에 딱 맞았다.내겐 호재다. 맛은 둘째치고 상품명도 별로라는 말들이 많아 모질게 내쳐진 녀석들을 줍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좋은가. 라면인데 이름이 케첩범벅이라니. 꼴도 별로에 머리도 그다지인 나와 닮은 것이 조금 측은했으나 객관적인 내 평가는 10중 10에 맛이었다. 그저 고루한 무리들의 무관심이 흐뭇할 따름.
때론 끼리끼리가 아닐까 의심도 더러 해보았으나, 이 깊은 맛을 나만 알아야 하기에 그럴 때마다 나대는 심장을 붙잡아야 했다. 문제는 너무 빨리 없어졌다는 것. 시장의 반응이 빠르게 반향 되지 못했다면 은근슬쩍 사라진 이유를 두고 지금껏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별별 맛이 만들어지는 라면 시장에서 셋 중 짜장만 살아남은 객관적 이유는 충분했다. 나 같은 특이성향의 컬트적 입맛을 뒷받침할 상품 가치가 부족하다는 거. 지금도 '비29'라는 봉지스낵이 사라진 걸 미스터리로 여기는 중이니 난 입맛에 개성이 강한 부류고 소수 편향적 맛들의 도태는 자연스러운 거였다. 쉽게 말해 안 팔려서 없어진 건데 어째 손가락 하나를 떼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이야 실험적인 상품들로 전체적인 광고효과를 높이는 전략이 먹히지만 옛날은 옛날이고 난 옛날 사람이고 그저 조금 아쉽고 그립고.
그나저나 '카레범벅'은 왜 함께 딸려 나갔는지. '비29'라는 봉지스낵은 내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건지.
비밥.
내 MBTI는 케첩범벅.
MBTI로 확실해졌다. 녀석과 찰떡궁합인 이유가.
I : '케첩범벅'이 상품화되었을 땐 누적된 개발과 평가가 충분히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니 별도에 시행착오 없이 바로 경험으로 진행해도 무방하다 판단. 고민할 것 없다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지만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소리 소문 없이 공기처럼 움직여 구입한다.
N :강렬한 색과는 다르게 맛이 은은하고 가을 같이 잔잔하지만 자칫 다른 이들로 하여금 특이성향을 떠올리게 하여 따돌림을 당할 우려가 농후하다. 짜장 등의 인기 상품이 다 팔리기를 기다려 다분히 의도적인 선택임을 감추고 어쩔 수 없음을 어필한다.
F :친한 친구와 함께 간 문방구에 짜장 맛이 딱 하나 남았을 시 자연스러운 양보로 우정을 도모하고, 마지못해 케첩을 집어 드는 측은함을 상기시켜 추후 다른 기회에 좀 더 나은 관계를 구축하는 계기로 삼는다. 사소한 행동이 가져 올 혈맹적 끈적임을 몸소 기대하며 인류애의 단초로 여겨 자주 반복 시행한다.
J :짜장과 케첩, 또는 카레와 케첩을 섞어 음미하며 범벅 간의 부조화를 경험해 보고 경험보다 나은 건 없다는 명제를 가슴 깊이 새겨, 혹시 모를 돌발적인 실험의 지랄을 애초에 차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