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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밥 Jan 31. 2024

'주제를 알아야지'

찰나와 놀기



국어 성적이

가장 우수했으나

여태 주제를 못 찾고 있다.









주제를 알아야지!!!  


안 좋은 의미로, 모종의 틀 밖을 넘봐선 아니 된다 쯤의 선 긋기.

어쩌면 우리보단 부모 세대가 더 들었을 법한 말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누가 정한지도 모르게 붙박이처럼 어딘가에 고착되어 누군가는 등에 업고 있을지도 모를 말. 의도된 공격성이 먼저 느껴지기에 내뱉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얻어가는 이익 따위는 없어 보이는 말. 확실히 내던진 사람이 더 비난받게 되고 그저 상황에 맞게 스스로 되씹는 방어적인 주절거림이지만, 아픈 곳을 찌르기 좋아하는 이들에겐 드라마처럼 맛깔나게 휘두르는 창 일수도. 던지는 사람의 의도가 '주제를 갖고 정진해라'일 모르나 그렇게까지 구차하게 돌려 말하진 않기에 농담과 악담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받아들이기 둘 다 썩 매끄럽진 않다.


정말이지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하지만 사실 어딘가에선 자주 쓰이고 있다. 금융자본주의 아닌가. 갑질의 빌런들이 애착하고 아끼지 않는 말이다. 가끔 뉴스를 타고 흐르는 뻔뻔함에 혀를 내두르지만 정작 본인들에겐 시시한 가십거리도 아니다. 힘이 있으니 당연하고 늘 해오니 아무렇지 않다. 끔찍하게도 오롯이 깎아내리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당장 내 부모가 또 내가 겪지 않아 드라마 대사쯤으로 흘리지만 내 부모가 겪을 수도 내가 겪을 수도 있을 만큼 사회 여기저기 팽배하게 퍼져있고 실존한다. 몇몇 소수이겠으나 아주 자연스럽게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살아오며 두어 번 정도 들어보니 "꼴에"와 더불어 사람을 기억하기에 이보다 으뜸은 없다.


그간 좋은 의미로 써오질 않았으니,

그럼 온전히 버려야 하는 것쯤 인가?






비밥.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이쯤에서 반드시 돌아보자는 것과 반듯하게 지금을 살펴보자는 것 정도로 짚고 가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의도를 갖고 던졌다면 해석의 합의는 없다)











주제를 알아야지... 


좋은 의미로,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 또는 엄마가 외쳐대는 '정신 좀 차려'

심오한 철학적 의미로 풀어보고 싶지만 대게 엄마의 호통 내지는 지랄 좀 그만하자는 자조적 외침이 더 들려온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비슷한 의미로 도전의 정도를 낮춰본 이들도 많을지 모른다. 현실에서 겪는 노력의 한계가 도전단계에서 겉돌다 보면 갖게 되는 초라한 방백 같기도 하고 개인이 바라보는 행복의 정도를 틀에 가두는 느낌도 든다. 표현만 놓고 본다면 충조평판의 집약적 말. 주제를 알아야지.


그럼에도 그냥 흘리기엔 왠지 아깝다. 고깝게 보고 비꼬는 말들이야 넘쳐나지만 백수로 지내다 보니 이보다 와닿는 말이 없다. 삶의 단초가 되어줄 것 같은 그리하여 멈춰버린 통장의 물고를 터줄 동아줄처럼 와락 붙잡게 되어버린 말. 주제를 알아야 날 선 지금을 살피고 치열한 경쟁사회에 던져질 수 있거늘 어쭙잖은 피해의식으로 감싸고 피하기만 한 건 아닌지. 수학 같은 것에 매진했더라면 주제 파악이 더 쉬웠을까? 농담이지만 확실히 숫자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으니 실소만 던지기도 좀 그런 것 같다.


금융자본주의가 빈부격차를 잠식해 오면서 행복의 척도는 유형의 틀에 갇혀버렸다. 같은 말도 시대가 뜻을 반영한다. 애석하게도 '제를 알라'는 말은 돈이 내게 던지는 명언 같은 지침이 되어가고 있다. 건강도 자존감도 즐거움도 노후도 어느 정도 풍족한 여유가 있을 때 더 채워지기 마련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무던히도 주제를 외치고 있다. 주제에 맞게 공부하며 주제를 찾아 도전하고 주제에 맞는 일을 해서 능력껏 늙어가라고. 하지만 경쟁은 너무 치열하고 자본은 항상 바닥이며 여지없이 돈의 흐름에 쫓기 현실에선 내몰리는 경우가 허다다.


여느 나라들처럼 개인의 행복 지수를 국가 발전에 한 지표로 두지는 못하더라도 자존감 향상을 위한 커리큘럼이라도 교육과 사회 전반에 걸쳐 있으면 좋으련만. 더러는 수치와 모욕을 참아 넘기며 일하는 게 당연시되고 아파도 일터에 나와 헌신하는 게 미덕이 되기 일쑤니, 노후 자금이 어느 정도 마련되더라도 늙어서 행복 한 장 펼치긴 어려워 보이는 현실이다. 월요일에 산 로또 한 장으론 꽉 찬 희망 고문들을 위로하기 부족하고, 알라딘 램프가 정말 존재하진 않을까 하는 환상 고문도 가져야 하는. 주제 파악을 한들 이 사회에서 우리에게 강요하는 행복이란, 알아서 빚 갚고 적당히 아프라는 것쯤. 그저 각자도생 하다 얻어걸리는 행운 같은 게 아닐까 의심된다.








우문현답은 늘 가까이.











비밥.




너 자신을 알고 주제를 파악하고 나면 굉장한 변화가 따라올까 싶지만

이건 현답을 주는 게 아닌 현실을 짚어보라고 던지는 쓴소리며

답은 각자가 찾아 두루뭉술하지 않게 콕 짚어야 한다. 


내 경우엔

이쯤 하면 됐으니 대가리 그만 굴리고 몸을 굴리란 답을 찾았으나

잔망스럽게도 아직 쌩까고 있다.


그리고,

온화한 눈빛을 머금은 아내의 미소는

언제나 날카롭고 정확하다.






주제를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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