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인도에서 출산을?

COVID-19 시대에 인도에서 첫 아이, 출산 이야기

by Dia K

글재주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적어 봅니다.

인생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죠? 제가 인도에서 첫 아이를 출산하게 될 줄 생각도 못했습니다. 막연하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누군가는 출산을 하겠지.라는 생각은 해보았지만, 그게 내가 될 줄이야,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경찰이 봉쇄령을 어긴 남성을 막대기로 때리는 장면.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임신 중기 무렵, 인도에 확진자가 대거 생기기 시작하면서, 정부에서 Lockdown을 시행했다.

이 나라는 '언제부터 Lockdown을 하겠습니다.'라는 예고 따위 없다. 뉴스에서 오늘이 지난 자정부터 Lockdown이 시행됩니다.라는 강경한 통보뿐.

아무런 준비 없이 현지 메이드들에게서 들려오는 입소문으로 식량을 대량으로 미리 구입 해 놓을 수 있었다.

인도에서 Lockdown인데, 출산하러 갈 수는 있는 거 맞아? 나 이러다가 집에서 낳는 거 아니지?



인도에서 출산할까? 한국으로 갈까?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나에게 두 가지 선택지 중 장단점이 명확했고, 시간은 걸렸지만 생각보다 단순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한국

한국이라는 것

여성병원으로 알아주는 강남 C병원에서 출산 예정

신랑 출근으로 인해 시댁과 가깝지만, 프리미엄 조리원을 예약함


신랑의 휴가는 한정적이라는 것

신랑이 주재원이기에 아기 100일까지 한국에 있을 수 없다는 점

신랑이 들어가고 나 홀로 서울과 경남을 오고 가며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인도

한국보다 좋은 병원 시설에서 출산이 가능한 점

영국에서 수중분만을 전공하며 잘하는 주치의가 있다는 것

우리 집이 있다는 것

신랑과 함께 출산과 육아가 가능하다는 것


내가 힌디를 할 줄 모른다는 것

조리원의 개념이 없다는 것

조리해 줄 사람도 없다는 것


임신 초기 3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포기하는 마음으로 한국에 갔었는데, 그때 이미 생겨 있었다.

3주 한국에 있다가 인도로 오는 비행기를 부킹 했지만, 태아의 안정기라는 15주! , 3달 뒤로 미루게 되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신랑 없이 있는 3개월이 지옥이었다는 것을.


나의 출산의 가장 큰 조건은 딱 하나, 출산 시 신랑이 꼭 내 옆에 있을 것!



다이나믹한 출산기, 인도에서 제왕절개 빼고 다 한 출산

35주부터 있었던 가진통에 38주부터는 1센티씩 벌어지는 자궁문. 매일 밤 오늘은 너를 볼 수 있을까? 내일은 보려나? 하며 매일 밤을 기다려 왔다.

출산하는 병원에서 출산 전 일주일 간격으로 COVID-19 검사를 시켜서 2번이나 했다는 건 안 비밀 (기분 나쁜 통증)

40주 0일 새벽 양수가 터졌고, 주치의에게 전화를 했다.

"재채기를 하는데 많은 양은 아니지만 밑에서 맑은 물이 새, 그냥 가짜로 기침을 해도 계속 새는데 이거 양수 맞니?"

주치의는 양수가 맞다며 병원으로 오라고 했고, 이미 나는 3센티가 열린 상태였다.



병원에서 NST 검사 중


NST 검사를 검사했을 때 139 수치가 올라가도 제법 견딜만했다. 수중분만의 핵심은 무통주사를 맞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출산을 하기 위한 분만 법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통증이 있을 때 물속으로 들어가 통증은 감통하며 어떤 의료도 개입하지 않고 출산한다. 세상 겁쟁이 쫄보인 나는 출산 전 수중분만의 몸을 만들면서, 의사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수중 분만 도중에 너무 아프면 무통주사 맞을 수 있니?" 의사는 "당연하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출산하면 돼. 노래를 틀어도 되고 , 향초를 피워도 사진을 찍어도 돼 네가 정하는 거야!" 그때 물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맛있었던 야채 오트밀과 짜이

신랑은 계속 물속에 들어가기를 권유했고, 나는 아직 아프지 않은데 5-7센티 열리고 들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 밥과 간식은 시도 때도 없이 나왔고, 생각보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놀라웠다. (신랑은 옆에서 참치와 컵라면으로 만찬을 즐겼다.) 그땐 헬게이트가 열릴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내 생의 헬게이트

4cm가 열린 상태에서 더 이상 자궁문은 열리지 않았고, 3-5분 간격이었던 진통은 운동을 하지 않으면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진통이 사라졌다.

만삭인 몸으로 나는 짐볼을 타고, 런지를 했으며, 스쿼트를 하기 시작했다. 양수가 터져서 운동할 때마다 폭포처럼 새어 나왔지만, 양수가 터진 이후 아기가 오래 있으면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나는 죽어라 운동을 했다.

나의 생에 첫 분만실

5cm부터 물속에 들어왔고 6cm부터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코끼리가 지나갔니? 트럭이 지나갔니? 아니요. 트럭에 코끼리가 타고 지나가던걸요.'

7cm부터는 거의 오열하기 시작했다. 죽겠다고 사지가 떨렸다. 내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보는 남편 또한 힘들었겠지?

22시간 진통 중 15시간 정도를 운동을 했으니, 애 낳을 힘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7센티가 열렸는데, 신랑은 무통을 맞으라고 권유했고, 너무 아깝다고 싫다고 고집을 피웠다. 하지만 7-8센티가 열렸을 때의 통증을 보고 있던 신랑이 말하기를 "너 진짜 이러다 죽을 거 같아, 무통 맞아! 싫으면 엔토 녹스라도 흡입해" 내가 왜 고집을 피웠을까? 내 탓을 하면 나만 속상해지니까, 내진했을 때 속 골반크기를 말하지 않은 의사를 탓해본다... 헤헤


엔토 녹스가 도움이 될까 하고 흡입했다.

정신이 혼미해지더니 힘주는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엔토 녹스를 마시면 감통이 돼야 하는데 나는 오히려 정신은 혼미해졌고 힘은 안 들어가는데, 진통은 더욱더 심하게 느껴졌다.

보호자는 들어올 수 없는 마취실

8센티가 열렸나? 결국 나는 실신 직전까지 왔고, 무통을 선택했다.

신랑이 없는 차갑던 수술실은 정말 무서웠다. 아기가 다 내려왔는데 앉기란 너무 힘든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앉아서 무통을 놔준다. 앉을 힘도 없고, 사지는 떨리는데, 다들 힌디를 하고 신랑이 너무 보고 싶었다. 무통을 맞고 다시 분만실로 왔다. 양수가 터지고, 분만이 너무 지연돼서 촉진제도 함께 맞았다.

힘을 주는데 이미 체력은 없고, 죽을 둥 살 둥 아기는 나오지 않았다. (태아 머리 크기가 4주 이상 빨랐다.)

이미 나는 내 정신이 아니었고 밑은 너무 아팠다. 2시간 사투 끝에, 신랑이 주치의와 얘기 끝에 Vacuum Extractor로 꺼내기로 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신랑한테 살려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출산 전, 출산 영상을 찍을 것이라고 했던 신랑은 영상도 사진도 한 장도 찍지 못했다.)


주치의가 몸을 뒤로 누우면서 Vacuum Extractor로 잡아당기고, 보조의사 둘은 질 입구를 기구로 벌려주고 있었다.

두 간호사는 양쪽 다리를 벌려 잡고 있었고, 신랑보다 덩치 좋은 간호사 둘은 내 배에 올라타서 푸시 푸시..


정말 내 생에 가장 힘든 경험이다.


그러고 아가가 나왔는데, 신랑과 나는 아기 쪽을 보지 않은 채 서로 안고 "살았네 살았어"를 외쳤다.

정신을 차리고 옆에 아기를 보며 "건강해? 진짜 괜찮아?" 수 차례 물어봤다. 다행히 아가는 진통 내내 바이탈이 정상이었고 3.6kg으로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다.


지금 우리 아가가 없었다면 이 행복을 알 수 있었을까? 너무 힘든 출산이었지만 네가 우리 곁으로 찾아와 줘서, 세상에 태어나줘서 너무 감사하다.


출산 후 분만실에서 휠체어 타고 회복실? 입원실로 왔었음.

출산 직후 검사와 접종하는 것 빼고 쭈욱 모자동실이다. 3일 입원하는 동안, 하루 종일 의사와 간호사가 왔다.

산부인과, 소아과, 영양학과, 통증의학과, 젖먹이는 방법, 목욕시키는 방법 등등 너무 정신없는데 많은 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누가 누군지도 몰랐다. 병원 프로그램 중 축하 케이크와 신생아 촬영, 석고로 만든 발, 둘라 서비스 등등 많은 서비스가 있었지만 이 병원에서 가장 만족하는 것은 실력 있는 의료진과 깨끗한 시설, 그리고 맛있는 밥이다.


인도는 출산까지 성별을 알려주지 않는다. 출산하고 방문 앞에 파란색 또는 핑크색으로 성별을 알린다.
아기 발모양이랑 스튜디오사진첩

아기가 태어난 건 너무 기쁜 일이지만, 입원 중 나는 서툴러 매일 같이 울었다.

아가가 출산과정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며 울고, 아기가 달달 떨고 있으면 출산 때 떨던 모습이 생각나서 나 때문인가 하고 울고, 잘 안 먹는다고 울고, 젖 먹이는 게 힘들어서 울고 그냥 계속 울었다. 그냥 엄마가 보고 싶었다. 친정 엄마 아빠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직 애 같은 네가 출산한 게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말씀하셨지만, 나 진짜 엄청 힘들었다고! 맞아 나도 아직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같은 앤 데!! 엄마 생각에 또 울었다..


그렇게 퇴원 날이 찾아왔고, 우리 둘이서 잘할 수 있겠지? 사실 좀 두려웠지만 신랑 옆이라 행복했다.

서툰 초보 엄마 아빠이지만, 온전히 우리의 힘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부모라는 첫발을 내디뎠다.


Truly the angel's best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외에서 코로나로 인해 한국을 가야 하나 해외에서 출산해야 하나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저는 제 집이 편했고, 신랑 옆이 제가 가장 안정을 느끼더라구요. 인도에서 임신 중에 주 경계를 풀어서 멘붕이 오긴 했지만, 인도에서 낳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참 그리고, 아마 해외에서 저보다 더 힘든 출산은 없을 거예요! 없길 바래요 :) 겁쟁이 쫄보인 저도 했는데, 어디서든 여러분은 순산할 수 있을 거예요. 엄마들 정말 리스팩 합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