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음악 하는 것은 한계인가라는 논의에 이어서 구체적으로 지역 뮤지션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사실,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조금 예민한 문제일 수도 있다. 안정된 급여나 수익이 보장되지 않고 일이 있어야지만 수입이 생명, 그 또한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 가끔 초면인 사람에게 내 직업을 이야기하면 첫 마디가 ‘먹고 살만하신가요?’라는 무례한 질문을 받기도 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음악을 직업으로 한다면 생계의 문제에 놓인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적인 인식에 있어서 ‘음악’하는 것에 대한 (존경심까지는 바라진 않아도) 어느 정도의 존중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아주 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외면하기 쉽지 않다.
대게 음악은 클래식, 전통음악, 그리고 대중음악으로 구분되며 연주자들은 소위 ‘행사’라 칭해지는 무대 연행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행사는 사적, 공적 단체가 주최가 되어 열리지만 대부분 지자체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 즉,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행사에 연주자들이 초청되는 것이고 대부분 ‘축제’에 해당된다. 이런 무대들은 음악인 중심이 아닌 행사의 주체나 참석 대상을 위한 것이에, 그 본래의 목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아는 대중적인 곡을 선호하기에 적어도 누구나 한번은 들어본 적이 있거나 아니면 현재 유행하는 음악들로 무대에 채워진다. 이는 음악 연행 현장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적이다. 클래식 연주자들은 고전, 낭만 시대의 음악을, 국악음악인은 판소리나 민요, 대중음악인들은 대상에 따라 트롯이나 7080, 그리고 지금까지 음악 순위 차트 10위권 안에 들었던 음악들이 행사에서 소비된다.
결국, 미디어의 영향으로 인해 끊임없이 기존의 것을 재생산하는 것, 그것을 창작행위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서비스 행위라 여겨질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음악가는 후원자들에 의해서, 그들의 자본을 통해 음악 활동이 이루어졌다. 그러한 관점으로 봤을 때 이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된다. 문화 예술을 위한 정부 지원금 역시 이에 해당되며, 지금의 예술인들의 후원자는 정부라는 것은 절대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외에는 누군가 작곡, 편곡 등의 제작을 의뢰를 받아 작업하거나 ‘레슨’을 통해 수익을 창출되며, 음악을 전업으로 하면서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온전히 나의 작품세계를 펼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절대 될 수 없다. 자기 음악을 하지 못하는 그래서 지금까지 음악 행위가 ‘서비스’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면 이는 언제든지 경쟁자에게 대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이지만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해야 하는 것이 여기서는 중요한 지점이다. 어찌 보면 대중성은 기존에 것을 모방하는 것으로 쉽게 획득되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예술성을 그 사이에 끊임없이 담굴 질을 하면서 함께 동반해야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칠 기회를 만남과 동시에 또 다른 수익창출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좋은 소리를 발현하기 위한 노력을 중심에 두고 또 자신 PR을 위한 개별 마케팅 전략도 수반되는 그러한 바지런한 21세기 음악인이 되어야 한다. 또한, 대중성의 목적을 두고 좋은 소리,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 내기 위한 개인의 노력은 '아트'의 영역에 가까워지게 만드는 것이므로 자기에게 주어진 어떠한 무대를 진정성 있게 임한다면 '대중성'을 지향하는 무대 일지로 연주자 한 사람으로 인해 '예술성'의 짙은 무대로 전환될 수 있으니 이는 결국 음악가의 몫이다. 그러니 작은 무대라도 소홀하지 않는 자세, 그 준비된 음악가만이 '먹고살 수 있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2025.3.6
** [글-콘]은 뮨지션의 ‘음악 글쓰기‘ 프로젝트로 ‘콘서트’라는 음악 고유의 활동을 ‘글’로써 시도해 보고자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는 음악의 다양한 의미와 그 가치를 쉬운 언어로 소통하고자 기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