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의 <갈라테아> 벽화
바티칸의 회화관에는 라파엘로의 10대, 20대, 그리고 30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라파엘로 특별 전시방'이 있다.
먼저 10대의 그림부터 살펴보자.
라파엘로는 열한 살에 궁정화가였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움브리아 화파의 대표인 피에트로 반누치, 일명 페루지노의 공방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그림을 배우며 페루지노의 다양한 색채 표현법과 우아한 인물 묘사, 그리고 원근법을 활용한 공간 구성도 익히게 된다.
아래의 그림이 페루지노가 그린 <성모의 대관식>이다.
그리고 이 그림이 라파엘로가 19세에 그린 같은 제목의 <성모의 대관식>이다.
사람들의 자세와 한 그림을 위와 아래로 분할하여 그리는 이중분할구도 같은 것들을 스승인 페루지노의 그림에서 배워서 활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라파엘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림 아랫부분에 성모 마리아의 석관을 그려넣었는데, 대각선으로 과감하게 한 가운데에 석관을 배치시키면서 석관을 따라 시선이 뒷편까지 옮겨지며 페루지노의 그림보다 훨씬 넓은 공간을 느끼게 한다. 입체적으로 공간을 구성한 것이다. 이렇게 라파엘로는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 '청출어람'의 아이콘이 된다.
이후에도 라파엘로는 다른 화가의 기법을 잘 흡수하여 자신의 그림에 그것을 적용한다. 그래서 '스펀지 화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라파엘로는 20대가 되며, 페루지노의 공방을 떠나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로 간다. 그때 피렌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같은 거장들이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의 기법을 배우는데, 바로 스푸마토 기법이다. '스푸마토'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인데, '연기와 같다' '흐릿하다' 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말그대로 레오나르도는 색과 색의 경계를 선으로 명확하게 구분한 것이 아니라 명암으로 흐릿하게 표현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모나리자>다.
웃는 듯하기도 하고 무표정인 듯 보이기도 한다는 '모나리자의 미소'는 뚜렷한 선으로 표현하지 않고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 스푸마토 기법 덕분에 생긴 것이다. 특히, 레오나르도는 사람의 얼굴에는 선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경계를 없앴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어도비 포토샵에서 이용하는 '손가락 툴' 기능이 거기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 더, <모나리자>의 배경을 보자. 풍경에서 멀리 있는 나무가 뿌옇게 보인다. 레오나르도는 화가이면서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공기 중에 있는 수분과 대기의 방해를 받아서 멀리 있는 것일수록 윤곽선이 희미해진다. 레오나르도는 이것을 발견하고 회화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멀리 있는 풍경을 뿌옇게 그리는 '대기 원근법'이라고 부른다.
라파엘로가 28세에 그린 <폴리뇨의 성모>를 보자.
레오나르도의 화풍을 흡수해서 멀리 보이는 마을이 뿌옇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 주변의 구름과 같은 아기 천사들을 보면, 명확한 경계선 없이 명암만으로 흐릿하게 묘사되어 있다. 10대에 그린 그림 속 사탕같은 아기 천사들과 비교해보면 라파엘로의 화풍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하고 놀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30대에 그린 그림, <그리스도의 변용>이다.
이 그림은 마태복음 17장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마태복음 17장에는 하루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올라 기도를 하고 있는데, 구약 성서의 예언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고, 그들 사이에서 예수님이 빛나는 모습으로 변하셨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모습이 변했다고 하여 '변모' 혹은 용모가 변했다고 하여 '변용'이라는 주제로 그려진다. 라파엘로는 변용의 순간을 그림의 윗부분에 그렸고, 아랫부분에는 그 뒤의 이야기를 그렸다. 예수님의 변용을 본 후,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오는 데 한 사람이 나타나서 자신의 마을에 있는 귀신 들린 아이(간질병에 걸린 아이)를 고쳐달라고 부탁을 했다. 부탁을 받은 제자들이 이 아이를 고쳐보려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제자들이 어쩔 줄 몰라하며 자신들은 할 수 없고 저기에 계신 우리의 스승님이 할 수 있다며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라파엘로는 이 그림을 그릴 때 미켈란젤로의 화풍을 흡수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적인 역동성, 근육질 신체 묘사를 적용한 것이다. 10대와 20대의 그림과 비교하면 확실히 그림 속 인물들의 움직임이 다양해지고 훨씬 격동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그림 속에는 라파엘로가 찾아낸 자기만의 화법도 들어가 있다. 바로 '빛과 어둠의 대비'다. 그림의 아랫부분을 보면 배경에 검정색이 많이 사용된다. 검은색이 있어서 빛과 대조되며 밝음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빛과 어둠의 대비 기법은 100년 뒤 바로크 시대에나 쓰인다. 라파엘로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에는 검정색 물감을 만드는 안료가 시체에서 나온다고 하여 검정은 '죽음'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다른 화가들이 쓰지 않던 색을 라파엘로가 과감히 사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도도 살펴보자. 10대에는 페루지노로부터 배운 이중분할구도, 20대에는 안정적인 삼각형 대칭 구도를 넣었다면 이 그림은 다른 방식이다. 처음에는 위와 아래가 분할된 이중분할구도라고 생각했고, 또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삼각형 구도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보면, 시선이 처음에는 예수님으로 향하고, 그리고 빛의 흐름을 따라 옆의 예언자로 이동한다. 그리고 눈길이 닿는 곳은 왼쪽 아래에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손가락이다. 그리고 손가락의 주인인 붉은 옷의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시선에 따라 오른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자와 귀신에 들린 아이의 얼굴까지 보게 된다. 빛의 흐름도 시선의 흐름과 마찬가지다. 거꾸로 된 S자 형의 구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이 방에 들어가는 횟수가 쌓일수록 나는 이 마지막 그림, <그리스도의 변용>이 기대되었다. 새로운 걸 발견하는 재미, 그리고 분명히 무언가 느껴지는데 아직 표현을 못 찾은 감정들이 남아있었다. 그러다 이 그림에서 보여주고 있는 역동적인 구도가 내가 이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구도를 표현한 것이 또 있는지 라파엘로의 다른 그림들을 찾아봤다.
그 중에 <갈라테아>라는 작품을 발견했다.
재미있게도 나는 이미 라파엘로를 조사하고 그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며 이 그림을 공부한 적 었다. 그때에 내가 쓴 발표 스크립트는 이렇다.
그리고 라파엘로는 로마의 파르네시나 별장에 <갈라테아>라는 프레스코 벽화를 그립니다. 이 그림을 보면, 갈라테아의 주위에 해신들이 빙빙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화면 전체에서 다양하고 끊임없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면서도 불안정하거나 균형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물을 배치하는 탁월한 솜씨가 보이며, 구도를 만드는 것은 최고 극치에 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파엘로는 이전 세대의 화가들이 이룩하려고 노력했던, 자유롭게 움직이는 인물들을 완벽하고 조화롭게 구성해낸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그 누구도 그만큼 아름다운 인물을 그려내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는데, 그 말 그대로 라파엘로는 인물을 정말 아름답게 그렸습니다. 생명력과 현실성을 잃지 않으면서 모델을 이상화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는 고전 시대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던 르네상스 사람들에게 감탄을 이끌어냈습니다.
나는 이때 조사를하며 로마 근교의 '파르네시나 별장'에 <갈라테아> 벽화가 있다는 것을 보고 언젠가 가봐야겠다고 생각만했었다. 로마 '근교', 그리고 '별장' 이니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야하는 먼 곳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그런데, 라파엘로의 구도를 찾다가 다시 확인을 하니 '파르네시나 별장'은 바로 '빌라 파르네시나(vila farnesina)'였고, 트라스테베레 지역이었다. 천사의 성(산탄젤로 성)에서 걸어서 30분도 안 걸리는 곳이고, (교통이 불편해서 누가 태워줄 때만 가지만 어쨌)자주 가는 식당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산책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는 정말 등잔 밑이다.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가서 그런지, 원래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없었다. 입장료는 10유로로 비싼 편이지만, 국립 박물관이 아닌 곳은 대부분 이 가격이다. 미술관이라기보다는 별장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었다. 따로 건물을 개조한 것은 없고 라파엘로와 그의 제자들의 벽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개방한 것이다. 덕분에 작품을 감상할 때 현장감이 있었고, 상상할 여지가 많았다.
오디오 가이드도 있었지만, 조용한 그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서 받지 않고 영어로 된 자료집을 구매해서 관람을 시작했다. 들어가자마자 첫번째 방이 <갈라테아> 벽화가 있는 방이다. 그리고 두 세 개의 방이 더 이어진다. 모든 방에 화려한 프레스코화가 벽과 천장에 그려져 있다. 정말 어디에 눈을 두더라도 그리스 로마 신화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방이었던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를 주제로 한 방이 재미있었다. 이 방의 벽화를 감상하기 위해 '에로스와 프시케' 신화를 다시 찾아 읽고, 그리고 그림으로 확인하며 라파엘로와 제자들이 해석한대로 또 한 번 읽었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수록 '이야기'를 알아야 그림이 재미있다. 이렇게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니 종교적인 이야기를 다룬 성화보다 인간적인 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이 재미있는 것 같다.
내가 사진을 못 찍는 탓도 있겠지만, 프레스코 벽화는 그 장소에 가서 봐야하는 작품이다. 보르게세나 바르베리니 미술관보다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 별장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내가 여기서 느낀 감동을 생각하면 이 곳에 방문객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다시 뙤약볕이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여유로우니 그 뜨거운 햇볕마저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로마에서 산지 두 달 째, 오늘 새로 깨달은 것은 로마에서 산다는 것은 라파엘로를 공부하다 궁금하면 그가 그린 작품을 직접 보러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생활에 지칠 때,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이런 곳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