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ro B선 cavour 역 부근
로마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학교 선배이자, 동아리 선배이자, 이젠 회사 선배가 된 언니와 만났다. 언니가 만나자고 한 장소는 Metro B선 Cavour역 앞이었다.
그 언니가 입사 준비를 할 때, 그리고 로마로 떠나오기 전 마지막으로 보고 4년 정도 만난 적이 없다.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만 지켜보고, 동아리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산다더라 하고 전해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취업을 준비하면서 그 언니가 다니는 회사의 모집 공고를 보자, 지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그 언니라면 어디서든 잘 살 것이 당연하지만, 그냥 '잘' 사는 것을 떠나 '멋지게' 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단순히 인스타그램을 보고 멋지게 산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내가 속했던 동아리에 대한 인상, 그리고 그녀에 대한 동경, 해외에서의 생활, 직업에 대한 환상, 또 내가 꿈꾸는 삶... 많은 것들이 뒤섞여서 지원을 했고, 합격했다.
중간에 많은 과정을 거쳤지만, 어쨌든 로마에 왔다. 그리고 Cavour 역에서 언니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라 설렘과 긴장을 품고 갔는데, 그것이 무색하게 편안했고, 로마에서 '나'로 있는 기분이었다. 그 뒤에도 일을 하면서도 마주치고, 다른 곳에서 만나 쌀국수를 먹기도 했다. 대화를 나눌 때마다 내가 얻는 안정감이 너무나 큰데, 그에 비해 가진 것이 많지 않은 나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한 번의 만남과 대화가 이후의 나의 일상에 오래 곱씹게 되는 기억으로 남는다. 늘 이렇게 큰 선물을 받는다.
언니는 만날 때마다 로마 생활 선배로서 좋은 장소들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근교의 바닷가를 알려주기도 하고 걷기 좋은 동네를 말해주기도 한다. 처음 만난 Cavour 역도 그랬다. 콜로세움 바로 옆 동네인데 관광객들로 붐비지 않는다. 서울의 북촌이나 통인동 같은 분위기다. 작은 편집샵들과 맛집들이 널려있다. 하지만 '로마스럽다'라고 하기는 어려워서 '여행'을 온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는 좀 망설여진다.
그런데 그저께 만났던 한 손님들이 나에게 맛집을 추천해달라고 물었을 때, 이 동네가 딱 떠올랐다. 그 손님들은 20대 후반의 여성분과 남성분이었다. 남성분은 이전에 로마 여행을 해본 적이 있었고, 바티칸 투어를 했었다고 한다. 그때의 기억이 좋았어서 또 바티칸 투어를 신청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텐데도 시종일관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여성분도 내 이야기 하나하나에 반응해주시며 미소를 보여주셨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내가 뱉는 말이 그들에게 닿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들에게 Cavour 역 주변 동네를 추천하고 싶어 졌다. 다른 손님들이 다 가고 마지막에 와서 나에게 맛집을 묻는 이 둘에게 나는 이 동네를 추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들이라면 이 동네를 좋아할 것 같았다. 마음이 앞서서 그만 실례를 하고 말았다.
"혹시 신혼여행 오신 거세요?"
분위기가 좋은 동네에 예쁜 펍을 소개하고 싶어서 말을 꺼내기 시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20대 후반의 나이를 알고 있었고, 커플처럼 보였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말이 나온 것 같다. 말을 꺼낸 순간 후회를 했다. 그리고 여성분이 잠시 멈칫하더니 대답을 했다.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웃으며 대답해주셨지만, 나는 나의 배려 없는 질문이 그들을 불편하게 했음을 알았다.
"아, 죄송해요. 그러면 혹시 여행에 시간 여유가 있으시면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어요. 유명한 관광지 근처가 아니라 교통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데, 괜찮으세요?"
여성분은 여유가 있는 일정이라고 했고, 나는 Cavour 역 근처가 걷기에도 좋고, 또 그곳에 예쁜 펍이 있다며 카톡으로 좌표를 보내드렸다. 마지막까지 그들은 웃으면서 편안하게 나의 말을 들어주었고, 인사도 밝게 해 주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마지막에 그 실수만 안 했어도...!' 라며 스스로를 질책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집에 와서 카톡을 하나 더 보냈다. 나의 불편한 마음을 없애고 싶은 이기심에 하는 사과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죄송했다. 그리고 이전에도 그런 질문을 받았을지도 모르며, 그때마다 불편한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르고, 앞으로도 오늘처럼 멈칫거리게 되는 순간들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의 걱정과 헛된 망상이 불러온 것일 수도 있지만, 내 직업은 여행에서 즐거움을 드리는 것인데 그러지는 못할 망정 나쁜 기억을 남길 수는 없었다.
오늘 잘 돌아가시고 저녁도 맛있게 드세요! 제가 아까 신혼여행이시냐고 물어봤던 게 불편하셨을까 봐 걱정이 되네요ㅠㅠ 더 알고 싶은 마음에 그만... 실수를 했어요! 죄송합니다. 기분 좋게 여행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괜찮다고 답을 주셨다. 그리고, 내가 추천한 펍에 그날 저녁에 방문을 했고, 나에게 외관 사진까지 찍어 보내시며 분위기가 너무 좋고, 맛도 있다며 즐거워하셨다. 어떠한 '괜찮다'는 말보다도 나로 인해 즐거움을 얻었다는 그 말이 나를 다독였다.
무뎌지고 익숙해져서 나의 일상에 아무 감흥이 들지 않을 때, 이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있었으면 좋겠다. 이때 내가 나의 실수로 얼마나 마음이 아렸는지, 그들의 마음에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했는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감동적인 일인지, 오래오래 간직하며 꺼내 보고 싶다.
나에게 Cavour 동네를 알려준 언니와
내가 이 동네를 알려준 사람들, 당신들로 이 곳은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