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에는 사람

Happy Now

by 머쓱

이번 주에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으나 많은 일들과 나의 감정이 뒤엉켜서 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 월요일부터 있었던 일들과 나의 생각들을 써 봤다. 그런데 그렇게 줄줄이 나열해가다 보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한 기록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나의 일상을 꿰뚫는 통찰을 하고 싶은 것이다('통찰'이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해서 거부감이 들지만, 다른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곧 희미해질 나의 기억을 붙잡아 두려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순간들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것을 쓰고 싶다.


그런데 아직 그 사건들은 진행 중인 것 같다.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사건의 문제 해결과 그에 대한 여파까지 수습하는 것은 별개다. 언젠가는 이 날들을 돌이키며 '그런 날도 있었지...'하고 덤덤하게 회상할 날이 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직 내 마음에는 현재 진행 중인 일들이라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다. 아직도 겪고 있는 중이라서 멀리서 보기가 어렵다.


이번 주에 일어난 사건 중에 하나는 바로 이사다. 누구나 다 해야 하는 별거 아닌 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서 쉬운 건 아니다. 나이를 먹는 것, 혹은 사랑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나는 이곳에서 살기 위해 어쨌든 이사를 해야 했고, 이번의 이사가 이탈리아 생활에서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 다음에 이사를 하는 건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 무겁게 생각해서 그랬는지, 신경이 많이 쓰였다. 단순히 짐을 옮기고 계약을 하는 것이 끝이라고 계속 생각을 해도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는 문제이다 보니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걱정한 보람도 없게 이사하기 전전날에 사고를 쳤다.


짐을 옮기기 전에 미리 집을 다시 봐야 할 것 같아서 갔는데, 내 집을 착각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집 현관에 키를 꼽았고, 그 키가 그대로 빠지지 않았다....


열쇠 수리공을 부르면 금방 해결될 일이었으나, 이태리어를 잘 못하는 나에게는 사고를 처리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에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얻어서 키를 빼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하는데 장장 6시간이 걸렸다.


어두운 밤에 집에 돌아가면서 눈물이 났다. 다행이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어떤 감정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 밤에 악몽을 꿨다. 다음 날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뭔가 계속해서 안 풀려있는 느낌이 무서웠다. 모든 것이 배배 꼬여 있었고,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서 위태로웠다.


그런 상태에서 짐을 계속 정리하고, 일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짐을 쌌다. 그러다 지쳐서 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이사를 시작했다.


동기가 도와주러 온 덕에 짐을 옮기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렇게 다 옮기고 나니 남은 것은 또 짐 정리였다.

짐이 많지도 않은데 끝나지가 않았다.


정리를 하고 또 하다가 끝없는 짐들에 항복했다. 정리되지 않은 짐들과 먼지에 둘러싸여 서 있는데,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화가 난다던가 속상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며칠 동안 내 안에 쌓여 있던 답답함이 무너지는 기분, 날카로웠던 감정선이 다시 무뎌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많은 감정들을 떠나보내면서 또 눈물이 났다.


사람에게 기대지 말자,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는 거라고 다짐해왔던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단단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척했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씩씩하게 다 해결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결국 어떤 것도 혼자 하지는 못했다.

무력감과 안도감이 동시에 든다.

나는 혼자 살 수 없고, 그래서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자.


조금 부족하지만 괜찮다고,

도움을 받는 것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나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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