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中) 여행

2박 3일의 피렌체 여행 3편

by 머쓱

2019.09.22 AM 10:30

새벽부터 오전까지 내내 먹었다. 또 폭식이다.


스물 네 살에 섭식장애를 앓았던 이후로 폭식과 구토라는 단어는 나와 뗄 수 없게 되었다. 예전에는 밤에 주로 폭식을 했다면, 이제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휴무가 규칙적이지 않은 직업을 갖게 되면서, 나의 폭토도 이제는 규칙 없이 나타나게 되었다. 혼자 밥을 먹지 말라는 충고를 많이 들었지만, 다른 사람과 같이 밥을 먹고 나면 집에 돌아와서 폭식을 한다. 일이 바쁘면 폭식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폭식을 하고 구토를 한 뒤 잠을 잔다. 사실 바쁠 수록 더 잦아진다. 이 안 좋은 버릇이 나아질 수는 있어도 없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김동영 작가가 말한 것처럼, 한 번 내 마음의 방 창문으로 새가 날아온다면 이전과 같아질 수는 없다. 그 새는 사랑을 먹고 배가 불러서 내 마음 밖으로 나갔지만, 나의 마음에는 새가 있던 흔적이 여전히 있다. 그래서 나는 폭식 습관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을 꿈꾸면서도 기대하지는 않는다. 언니를 제외하고는 이제는 누구에게도 내가 폭식을 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폭식'이라는 단어는 볼드모트다. 말하지 않는다고 없던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현실감이 들 것이 두렵다.


언젠가부터 여행을 떠나면 이 습관이 좀 더 심해졌다. 재작년 겨울에 친구들과 강릉여행을 떠났을 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2시간 내내 빵과 과자를 먹었고, 일본 여행을 갔을 때에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면세점에서 산 과자와 초콜렛을 비행 내내 먹었다. 어디를 가면 '먹어야 한다'는 강박이 더 심해진다.


그렇게 먹으면서 내가 하는 생각은 늘 똑같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새 삶을 살아야지'


왜 나는 여행만 떠나 오면 새 삶을 꿈꾸는가. 나의 일상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왔다고 한다면,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그런 출발이 아니었다. 일을 열심히 하는 와중에 시간이 나서 공부 겸 여행을 떠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행이 끝나면 나를 바꾸겠다고 다짐을 한다. 특히나 내 몸을 줄이고 싶다. 여행의 더부룩함을 그렇게 해소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일상이 아닌 곳에서는 덜하거나 더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늘 더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곱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떠나온 곳의 나는 늘 부어있다. 그 붓기를 빼고 싶어하는 걸까.


오늘 돌아가면 운동을 시작해야지. 돈을 모으기 시작해야지. 공부를 해야지.

이런 결심들로 마음은 더 더부룩해질 뿐이다.







이게 여행기의 끝이라면 믿어지시는가.


나는 여행기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여행기들은 희망이 가득차서 돌아오거나, 아니면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끝이 난다. 혹은 친절하게도 에필로그로 돌아와서 어떻게 잘 사는지, 변화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하지만 나의 여행기의 끝은 이렇다.


나는 또 폭식을 했고, 그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내 폭식의 흔적은 한인 민박의 쓰레기통에 남아 있고, 나의 좌절은 구토를 받아 낸 변기만 알 뿐이다.


그 시간은 아무렇지 않게 덮어버린다.


그리고 회개하듯 교회를 갔다. 피렌체의 한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죄를 고백한다.


신이 주신 소중한 기회로 피렌체에 왔는데, 나는 스스로 그것을 망치며 나쁜 기억을 만들고 가려고 했다고.

이런 나를 용서하고 피렌체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나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빈다.


이렇게 후회를 남기며 기차에 오른다.


하지만 또 다시 어딘가로 떠날 것이다. 내가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고, 마지막에는 폭식을 하며 더부룩한 배를 부여잡고 새로운 삶을 꿈꿀 것이라고 뻔히 알면서도 나는 여행을 떠날 기회가 오면 잡을 것이다. 그 기회는 한 인간의 삶이라는 지루한 여행의 시간을 빠르게 흐르게 하니까, 나는 또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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