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실직

D-day 계산을 잘하지 않는 사람

by 머쓱


나는 수능을 한 번 봤다. 수능을 며칠 앞두지 않은 때에 학교 자습실 책상에 앉아서 했던 생각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나는 이 짓을 두 번 다시는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정말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사실 누가 수능을 두 번 보고 싶었겠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뒤로 시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는 ‘시험’ 혹은 ‘합격’이라는 단어와 아주 멀어졌다. 귀가 얇고 팔락이는 사람이라 누군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면 ‘나도 해볼까?’ 생각했지만, 곧바로 ‘아냐. 두 번 다시는 그런 짓 안 하기로 했잖아.’라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동기의 남자 친구가 CPA(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했을 때에도 나는 흔들렸다. 심지어 동아리의 아는 언니가 로스쿨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에도 마음에 바람이 불었다. 그때마다 나를 붙잡은 것은 두 번 다시는 ‘그 짓(시험)’을 하지 않겠다던 다짐이다. 어쩌면 그때 깨달은 것 같다. 나는 수행평가형 인간이다. 작은 결과물들을 모아서 봐야 제대로 나를 보여줄 수 있다. ‘한 번’ 혹은 ‘하루’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다 약하다. 좋게 말하면 나는 아카이빙에 자신이 있다.


그래서 D-day 계산이 싫다. 수능 백일 전에 기념하며 술을 마신다고? 아니, 백 일이라는 걸 모르고 지나가고 싶다. 우리가 사귄 지 백 일이 되었으니 기념하자고? 아니야. 난 너를 만난 이후의 매일매일이 소중했어. 백일 째를 기념하면 그다음 이백일 째가 될 때까지 우리의 날들이 서운하지 않을까? 101일에 너는 나에게 소원할 거니? D-day가 어느 날인지 모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아버지의 개가 죽은 날. 그 날은 평소와 같았다. 보통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있었고, 아버지는 없었다. 그 개가 있던 자리는 같았지만, 개는 사라졌다. 하루아침의 일이었다고 했다. 갑자기 아팠고, 병원에 데려갈 새도 없이 죽었다. d-day를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D-1에 목을 긁어주었을 것이다.


D-day 이후를 세는 사람을 봤다. 사실은 주변에 많다. 스마트폰 액정에 D-며칠이 아니라 D+며칠인 사람들. 처음에는 ‘이 사람들은 뭘까?’ 싶었다. ‘기다렸던 날의 이후를 세는 것은 어떤 심리인 거야?’ 라며 황당해했다. 그들은 날짜를 세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일본 오사카에 교환학생을 갔던 여름의 끝. 2016년 8월 31일, 오사카 간사이 대학교 기숙사에 입주한 날, 그 날은 D-day였다. 하지만 사실 나는 도착하는 날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의 생활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날부터 d+1, d+2, d+3… 이렇게 오사카에서 머문 날짜를 세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의미 없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결국 ‘일본에 도착한 날’이라는 d-day는 +를 계속 보여주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라는 새로운 d-day가 생기면서 다시 -를 보이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원래 d-day는 군사용어였다고 한다. ‘Decimal(십진법의) day’ 혹은 ‘day of days(여러 날들 중의 하루, 즉 가장 중요한 날)’의 약자라고 한다. 무엇이 진짜 어원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생겨난 것은 확실하다고 한다. 군사작전에는 실제 날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공격 예정일을 확정하고 그 날짜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D -1, D+2 가 생긴 것이다. 같은 의미로 공격 예정 시간은 H라고 한다. 공격 개시 세 시간 전은 H-3이다. 어원이 확실하지 않다고 하니 나는 생각해본다. 연인 사이의 D-day는 ‘Dating day’의 준말이 아닐까?


나는 로마에 집이 있고, 거기서 일을 한다. 대상은 유럽 여행을 온 한국인들이고, 파는 상품은 지식과 말이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여행업 종사자고, 직업은 여행 가이드다. 그리고 이 직업을 가진 건 일 년 전이다. 입사 1년 차의 파릇파릇하고 열정 넘치는 가이드이면서 동시에 퇴사할 날을 속으로 계산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어제 실직했다(고 생각한다).


돌아갈 수가 없어졌다. 3월 18일 저녁 6시 기준 이탈리아 보건당국은 전국 누적 확진자 수가 3만 5천713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하루 만에 이탈리아에서는 475명이 사망했다. 누적 사망자는 2천978명이다(2020년 3월 19일 오전 4시경 현재). 누적 확진자 수 대비 누적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치명률은 8.3%까지 올랐다.


엊그제는 나의 d-day였다.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이미 한 달 전에 인천-로마 운행 항공기의 비운항 결정으로 로마로 돌아가는 것을 미뤘다. 하지만 나의 다이어리에는 여전히 3월 17일에 노란 색연필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오늘은 D+2다. 이제 앞을 알 수가 없다. 나는 실직했다. 공격 예정일에서 이틀이 지났다. ‘Damn day’의 준말이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낮에 한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선배는 다양한 상황들을 고려해서 대비해야한다고 했다. 아, 멍해졌다. 그럼 저는 어떡하죠, 선배님? 아니, 이제 실직했으니 선배가 아니게 되나요? 이 순간에도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저에게는 '고려'와 '대비' 같은 단어는 사극에서나 들을 수 있는 단어겠죠?


사실 한국으로 휴가를 오기 전에 계획이 있었다. 로마에 돌아가서 친한 동료와 함께 팟캐스트를 하려고 했다. 4회까지 녹음을 해두었는데, 그 동료는 나보다 먼저 실직을 했다. 코로나 사태 직후였다. 내가 다니는 회사보다 작은 여행 회사에 다니고 있었어서 아주 빠르게 회사를 접었다. 신기했다. 작으면 빨리 움직인다. 마치 필기구는 삼색 볼펜만 가지고 다니는 사람처럼,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볼펜 하나 넣고 떠나버렸다. 그에 비해 우리 회사는 연필 꽃이를 들고다니는 학생같다. 가치 있는 만년필도 있고, 톡톡 튀는 형광펜도 있고, 색연필도 있다. 그 중에 나는 뭐였을까? 나는 아마 포스트잇이다. 떼었다 붙일 수 있다. 쉽게 버릴 수도 있다. 왜냐면 사실 나는 아직 회사에 정직원으로 등록을 못했다. 1년이 지난 이후에 등록을 할 수 있는데, 바로 이번 달이 1년이 되는 달이었다. 아, 이것마저 d-day였군. 아무튼 떨어질 것 같다.


선배는 말했다.


"기술을 배워놔라. 먹고 살 기술."


여기에서 차마 "그러면 어떤 기술을 배울까요?"라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건 마치 어떤 주식을 몇 시에 사야하냐고 물어보는 염치 없는 네이버 증시 토론 댓글 창의 초보자 같아서(물론 그 초보자가 바로 나다). 먹고 살 기술이라... 모든 사람을 홀릴 수 있는 대화의 기술이나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글을 쓰는 기술 같은 게 있다면 배우고 싶기는 한데, 먹고 살 기술은 잘 모르겠다.


퇴사를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직하고 싶지 않다. 주식을 언제 살까 고민하지만, '하향가'라는 단어가 달갑지는 않다. 사람이 없는 영화관은 좋지만,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집 앞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자영업자들 다 망해간다고 슬퍼하는 것도 보고 싶지 않다. 나는 오늘은 실직하고 싶지 않다. 왜 오늘이어야 할까, 왜 어제 475명이 죽어야 했을까, 왜 이 날들일까.

왜 이틀이 지났을까.


날짜에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나를 보니, 역시 d-day 계산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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