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패는 피임성공률 100%

by 머쓱


안녕하세요? 어느새 날이 많이 더워졌습니다.


2020년 3월 19일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렸으니까 두 달이 넘도록 글쓰기를 하지 않고 있었네요. 가수들이 곡의 제목따라 대박이 결정난다고 말하듯, '실직'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쓰고나니 모든 의욕이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얼토당토 않은 핑계를 찾느라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도 첫 인사를 적는데 며칠이 더 걸렸다고 하면, 정말 게을러 보일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사실인걸요.


2020년 2월 18일, 로마에서 한국으로 휴가를 온 날입니다. 그리고 코로나19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예정되어있던 3월 17일에 로마로 돌아가는 것에 실패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저도 이렇게 코로나19 사태가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금세 일상을 되찾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래서 이탈리아어 학원에 다녔습니다. 유창해진 이탈리아어로 투어를 능숙하게 진행하는 제 모습을 상상하며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흐르기도 전에 풀이 꺾였습니다.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불확실해졌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난 후에는 절대 이전과 똑같은 날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일상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갑자기, 뜻밖에, 준비되지 않은 채로 전의 일상과 이별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상실이든 애도가 필요합니다. 이전의 일상을 보내주며 저의 마음을 다독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별에 대한 글쓰기는 어렵습니다. 어떠한 언어로도 완전한 표현은 불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섣불리 손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찾은 제가 글을 못 쓰고 있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또 다른 제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영감을 받을 곳이 없어서입니다.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건이 없었습니다. 방금 그 문장을 쓰면서, 읽는 분들도 마찬가지셨겠지만, 어이가 없었습니다. 글을 쓰는 데 영감이 필요하다니... 사실 글을 쓰는 것은 습관입니다. 써야겠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특히나, 저는 훌륭한 글을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니까요. 아주 건방지게도 저에게는 쉬는 날에 노트북 앞에 앉으면 뚝딱하고 써지는 것이 글입니다. 이것은 글쓰기를 전업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금전을 받는 것 없이, 오직 나를 위한 글쓰기라서 가볍습니다. 그 가벼운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왜 어렵지도 않은 일을 못할까 수십번 자문해보았는데, 한심하게도 제가 내린 답은 쓰고 싶은 것이 없다는 겁니다. 사실 제 인생은 장르를 따지자면 시트콤입니다. 영화가 되기에는 세부장르가 적절한 게 없습니다. 액션이 되기에는 너무 정적이고,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사건이 소박하고 개인적입니다. 그렇다고 로맨틱 코미디는 절대, 절대, 절대 아닙니다. 그냥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재미 요소가 24시 국밥 체인점의 깊은 맛만큼 아쉽습니다. 제 삶은 아주 일상적이고, 사건은 자주 일어나지만, 대부분 웃어 넘길만 합니다. 한 화의 끝에는 교훈이 있고 반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다음 화에서는 또 실수를 저지르죠. 성실한 시트콤입니다.


그런데, 이 시트콤이 지금 주연 배우인 저 모르게 시즌 2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요즘 사건이 없습니다. 하지만 장르 변경은 없으니, 제 인생은 곧 사고를 칠 겁니다. 폭풍 전야와 같아요. 제발, 제 인생의 시트콤 시즌 2의 마지막 장면이 제가 한 남자와 차 안에 앉아있고, 갑자기 세피아 필터를 쓰면서 카페베네 광고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쓰고 보니, 이건 괜한 걱정인 것 같습니다. 제 시즌 2는 그 정도로 관심을 받지 않을 거니까, 부담감에 못 이겨 회피성 결말을 선택할 일은 없을 테니까요. 어쩌면 시즌 2가 이미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글을 '임시 저장'하지 않고 '저장'한다면 시작이겠죠? 그러면 이렇게 '시즌 2를 준비 중이다'는 말로 두 번째 이유를 설명해봅니다.


제가 추정하고 있는 글을 못 쓰는 마지막 이유는 제 실패의 피임성공률이 너무 높아서입니다. 며칠 전, 학원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린 날이었습니다. 스케치는 잘했는데, 색을 입히다가 망쳐버렸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옥상에 바람을 쐬러 가며 학원 친구 태영과 엘레베이터 앞에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나: 아, 오늘 실패했다. 슬프다.

태영: 괜찮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잖아.

나: 그래, 맞아.

태영: 근데, 내 실패는 불임인가봐.

나: ... (한 술 더 떠) 그렇다면 내 실패는 피임을 존나 잘한다.

태영: ㅋㅋㅋㅋㅋㅋㅋ

나: ㅋㅋㅋㅋㅋㅋ 철저한 새끼네. 정 없게 느껴지지만, 옳은 일이지.


태영과 저는 한 술만 뜨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늘 대화의 끝에는 배부름이 남아있고, 그 나른함에 다른 일을 하기 어렵게 됩니다. 저는 배부름에 취해서, 그날은 온종일 실패와 성공과 피임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두 술, 세 술을 뜨는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문득 '초박형'이라는 단어에 꽃혔습니다. 콘돔에는 많은 종류가 있는데, 사이즈로도 나뉘지만, 사정을 지연하는 마취형 콘돔, 겉면에 돌기가 나있는 콘돔 등 기능이나 형태로도 구분됩니다. 그 중에 초박형은 뜻 자체가 '매우 두께가 얇은 형태(출처: 네이버 어학사전)'로 무척이나 얇아서 맨살과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분들께는 지루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네요. 여하튼 저는 그날 '초박형'에 꽃혀서 유튜브까지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후기들을 읽으면서 생각했어요. 저의 실패는 울트라 초박형 콘돔을 쓰는 것이 분명합니다. 느끼기는 존나 느끼는데, 피임성공률이 높거든요.


실패한 것이 성공을 낳지 못해서, 저는 다음으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기에 글을 쓰지 못하는 마지막 이유입니다. 두 달의 공백을 깨는 글로 이런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은 정말 아닌데요. 제가 글을 못 쓰는 이유를 생각하다보니 이런 글이 나와버렸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쓰고 있네요. 사실 못 쓰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이유를 찾다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도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연속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시인 친구를 만나고, 다음 날에는 로마에서 만난 가이드 동생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둘 다 제 글을 기다리고 있더군요. 제가 또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부응하려고 노력은 하는 사람이라서요. 다음 만남 전까지 한 편은 써야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요즘 제가 좀 재미있어졌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저는 '재치'를 사람이 갖고 기를 수 있는 최고의 가치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웃게 하는 데에는 분위기를 파악하는 통찰력과 치고 빠지는 순발력, 게다가 나의 말이 통할 것이라는 자신감과 그것을 실행하는 결단력, 그리고 추진력까지 필요합니다. 우연히도 재치있는 사람을 만나면 삼국지를 완독한 기분을 느낍니다. 아주 뿌듯해져서 집에 돌아와요. 타고 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길러지는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한 사람이 계속 재치있는 것도 아닙니다. 상황도 받쳐줘야 하죠. 또, 실제로 본 사람에게만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 영화나 방송에서도 재치있는 순간을 느껴요. 제가 19살 때 봤던 배우 하정우가 그랬습니다. 그때 하정우가 출였했던 '힐링캠프'를 보며, 너무 재치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편만 세 번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는 하정우를 보며 재치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최근에 또 한 재치 부리셨더군요.


본론으로 돌아가면, 요즘 제가 가끔 재치가 있습니다. 하하, 조금 쑥쓰럽네요. 말을 툭 던져놓고, '아, 방금 나 좀 재치있었다.'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정우가 아니니까 10년 후에 누군가 '그때의 당신은 재치있었어.' 라고 말할 확률이 낮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써놓고 기념하려고요.


마지막 이유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린 날에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도 느끼죠. 그 무한한 가능성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점점 가능성의 폭이 좁아져요. 새로운 도전 자체는 멋있지만, 막상 나의 눈 앞에 펼쳐지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리고 한계라는 것도 느끼게 됩니다. '무엇이든, 언제든지 해볼 수 있다'에서 '무엇'의 범위가 좁아지고, '언제'도 한정됩니다. 예를 들어서 운동이 그렇습니다. 어떤 운동이든 지금 해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저는 예전에 복싱을 배우려고 일주일 체육관에 나가고, 무릎이 상해서 한 달을 제대로 못 걸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복싱을 하고 싶지만, 그때 무릎이 아팠던 것을 기억하면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렇게 경험을 통해 못하는 일이 생기고, 또 하지 않는 일도 생깁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스포츠 관람을 재미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구장에 가자는 제안은 거절합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판타지 소설이나 장르 소설은 읽으며 흥미를 못 느낍니다. 그래서 읽지 않아요. 이런 것들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죠. 이렇게 하나하나 제외해가다보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책읽기, 영화보기, 그리고 글쓰기.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죠. 그래서 다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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