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일기
부제: 케이-팝 처돌이이지만 카페에 케이-팝이 나오는 건 싫습니다
오픈 5일 차입니다.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10시이지만, 아직 초반이라 저는 의욕이 넘칩니다.
9시 전에 출근을 해서 쓸고 닦으며 괜히 부지런을 떱니다.
화병의 물을 갈아주고, 줄기를 사선으로 잘라서 다시 넣어줘요.
가끔 벌레가 보이는 것 같으면 물에 락스를 아주 조금 섞어줍니다.
그러면 생화가 훨씬 오래 싱싱한 모습을 유지해요.
이제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들으면서 청소를 합니다.
그리고 아침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올려요.
서점학교에서 배웠는데, 하루에 게시물 두 개를 꼭 올려야 한대요.
그래서 저는 아침, 저녁으로 하나씩 올리고 있어요.
그런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피드를 살펴보며 드립 커피와 함께 아침을 먹습니다.
아침은 주로 고구마 반 개를 먹어요. 할머니 댁에서 팔뚝만 한 고구마를 가져왔거든요.
다 먹고 나면 정리를 하고 일을 시작합니다.
먼저 준비 중인 온라인 홈페이지에 상품을 등록합니다.
언제까지 준비만 할 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매일 한 두 시간 씩 준비하다보면 곧 홈페이지가 짠- 하고 열리겠죠.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더 열심히 해야합니다.)
12시 쯤이 되면 서가를 정리합니다.
아직 추천사가 안 붙어 있는 책들이 몇 권 있어서 쓸 것이 많습니다.
책을 읽는 시간만큼이나 추천사를 쓰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그러다보면 금새 오후 3시가 됩니다.
아침형 인간인 저는 이때 쯤이면 기력이 없어집니다.
커피를 한 잔 더 마시면서, 블로그를 열거나 제 유튜브를 열어요.
하지만 곧 제 유튜브에서 나와 알고리즘을 따라 이리저리 떠돌기 시작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마마무 청룡영화상' 이에요. 보면 괜히 힘이 솟습니다.
차애 영상은 '조승우와 박경림의 배우왓수다 인터뷰' 입니다. 이건 보면 아주 즐겁다니까요.
그리고 '블랙핑크 코첼라 라이브'를 봅니다. 가슴이 웅장해져요.
게다가 새로운 영상들까지...
그렇게 유튜브를 한참 보다가 시계를 보면 뜨헉! 합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고?'
하면서 정신을 차리려다가 못 차립니다.
오후가 될 수록 점점 게을러지거든요.
이젠 넷플릭스와 왓챠 사이를 유영합니다.
보지도 않으면서 '찜하기'와 '보고싶은 목록에 추가'만 엄청 눌러요.
그거 누른 것만으로도 감상을 다 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합니다.
그러다보면 6시가 됩니다.
잠깐 각성을 하고, 독서를 시작합니다.
열심히 읽어요. 보통 책 한 권을 이틀에 걸쳐서 읽는 편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책을 읽던 것이 습관이 되어, 한 시간 이상 독서는 어렵습니다.
아 참, 그 사이에 손님은 한 두 명 쯤 다녀갑니다.
아직 오픈 5일 째라 그러겠죠? plz.
친구들이 다녀간 날에는 일을 많이 못했지만,
제가 힘이 빠진 시간이나 다녀간 손님 수는 비슷합니다.
대망의 7시.
7시 이후에 손님이 온 적은 4일 동안 한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제일 지쳐있는 시간이죠.
그래서 오늘부터 저는 혼자 케이-팝 파티를 열기로 했습니다.
낮 동안에는 카페에서 재즈나 팝송, 혹은 한국 인디밴드의 음악을 켜둡니다.
가끔 지겨우면 가지고 있는 LP들을 켜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케이-팝 처돌이인걸요.
재즈와 팝송만 들으면 팬케이크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은 기분이에요.
하루 종일 쌓인 재즈를 털어내는 기분으로
몬스타엑스의 'DRAMARAMA',
아이유의 '분홍신',
오마이걸의 '비밀정원',
샤이니 'view' 등등
7시를 기다리며 플레이리스트를 만듭니다.
저는 케이팝을 좋아하지만 케이팝을 틀어 놓은 카페는 싫습니다.
케이-팝은 스피커로 듣는 것보다 에어팟으로 들어야 할 것 같아요.
어쩐지 그렇습니다.
그러나 용기 있게 오늘부터 7시에는 케이-팝을 틀겁니다.
벌써 신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