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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 Sep 16. 2019

내가 나일 수 있게 _예지(Yaeji) 내한 공연

예지(Yaeji) 내한 공연 @Yes24 Live hall

예지 내한 공연을 다녀왔다.

예지는 한 인터뷰에서 왜 '내한' 공연이라고 하냐며,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는 한국인이며 한국어와 영어 가사가 섞인 음악을 만든다.

그에게는 '영국 BBC가 주목한 한국계 미국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장르로 따지자면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의 한 종류인 하우스(House) 뮤직' 이지만, '무국적' 음악이라는 평도 듣는다.


그의 음악은 노래라기엔 주문을 외우듯 조용하고 나지막히 속삭이고, 리듬과 비트에 몸을 맡기게 된다. 하지만 찬찬히 가사를 들여다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어릴 적 듣고 자란 가요는 한국어로 된 절절한 발라드나, 또는 H.O.T나 젝스키스처럼 아이돌의 예의 그 영어가 좀 섞여야 멋있어보인다는 생각에 넣은 영어랩이나 짧은 영어 문장이 추임새처럼 섞인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들이었다.


그런 내게 예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작년인가 애플뮤직의 메인에 떠 있어서 들어보게 된 그의 음악은 독특한데 빠져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1년 정도를 한국에서 보낸 것이 전부인 그가 한국어와 영어가 반반 섞이거나 혹은 대부분이 한국어 가사인 음악을 미국에서 펼치고 그것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한국어가 지닌 발음의 특성이 예지에게는 매우 아름답게 들린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음악에서 한국어는 단순한 가사가 아닌 소리의 역할을 강하게 하는 것 같다. 언어가 단순히 의미전달의 역할 뿐 아니라 음악을 완성하는 하나의 악기가 되는 것이다.


공연에서 예지는 노래와 춤, 디제잉을 섞어서 보여줬는데, 예상보다 춤을 잘 춰서 놀랐다. 춤을 전문적으로 잘 춘다기보다 리듬에 맞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춤을 추지만 그 표현은 확실히 음악과 잘 어우러졌다. 자신은 가수이기 이전에 프로듀서라는 말을 인터뷰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말처럼 그는 음악 전체를 총괄하고 조정하고 만들어냈다. 그의 속삭이는 듯 한 목소리가 울리는 비트와 음악에 녹아들었고 사람들은 점차 리듬에 몸을 맡겼다. 환호하기 시작했다. 'drink i'm sippin on'의 그 유명한 후렴구 '그게 아니야'를 주술처럼 부르기 시작하자 관객 모두가 따라 부르며 환호했다.


중간에 그는 외국에서 공연할 때 '그게 아니야'를 서툴게 따라 부르는 관객들에 대해 말했고, 그에 반해 이렇게 정확한 발음으로 열광적으로 따라하는 우리에게 놀란 듯 했다. (당연하지 한국인이니까.) 역시 '내한공연'에서 가수들은 한국 관객들에게 감격하곤 한다.

또한 한국어로 이렇게 대화해 본 게 처음이라고 말하다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보였다. (나중에 다른 기사를 찾아보고 알았는데, 작년에도 한국에 한 번 공연을 왔었는데 그때는 dj로 온 것이고, 이번 공연이 제대로 노래하고 관객과 대화하는 첫 공연인 것 같았다.)

모국인 한국에 와서 한국인 관객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 그리고 함께 열정적으로 춤추고 노래하고 교감하는 것에서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듯 했다.


그는 어릴 적 많은 차별을 겪었다고 한다. 대학에 간 이후 자유로워졌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래서일까. 그의 가사는 자전적이다. 애플뮤직 광고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one more'에서 '이제와서 무릎꿇고 빌어봐도 소용 없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그러나 담담하다.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오히려 무심한 듯 읊조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런 담담함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감내해야 했을까 싶어 가사들이 무겁게 다가온다.


인생에서 누구나 힘든 시간이 있고, 타인과 부딪히고 차별과 맞닥뜨리는 순간이 있다. 고통을 겪고 단단해지고, 결국은 난 나로서 존재한다는 담담하고도 강인한 목소리를 가지는 것. 예지의 그런 모습에 나를 투영해본다. 어쩌면 그간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걸 딛고 어떻게 내가 나로서 오롯이 설 수 있는지, 내 안에서 체화하고 발전시켜서 음악이나 글, 성격이나 인생관으로 표출되고 성장하는 것. 결국은 어떻게 발현되느냐가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풍파를 만날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잘 싸우고 어떻게 건강하게 겪을 것인가.


그는 한국어로 가사를 쓸 때 제가 가장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점차 인종이나 국적은 크게 중요치 않은 시대를 걸으며, 오히려 개개인의 정체성이 중요해 지는 것 같다. 아마 예전부터 우리가 '개성'이라고 부르던 것이 아닐까 싶지만, 그와는 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비교와 참견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좀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자세가 아닐까.


참고 영상 (Yaeji - Drink I'm Sippin On (Official Music Video)   

https://youtu.be/xoxCItHxLiM?list=RD_3T8KznhThQ


참고 영상 (Yaeji - One More (Official Video)

https://youtu.be/dyPOhGIc1RI


[참고 기사, 인터뷰]

*1

문화일보 [BBC가 주목한 뮤지션 예지 “한국어, 가장 아름다워]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021/0002398642


*2

HYPEBEAST 하입비스트 인터뷰 [예지 x 씨피카 인터뷰 - 남들 다 하는 건 지루해요]

https://hypebeast.kr/2019/7/yaeji-cifika-double-interview-raingurl-passionfruit-dooroogo-momom?utm_term=Autofeed&utm_medium=social&utm_campagin=twitter_post&utm_source=Twitter#Echobox=1564581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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