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니까, 앞으로 살아갈 나를 생각해서
생일 아침을 보통의 휴일과 다름없이 맞이했다.
요즘 읽고 있는 [명랑한 은둔자]를 조금 더 읽었는데 술에 관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중인 저자의 다른 에세이 [드링킹]엔 더 상세한 내용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대목을 읽었다.
저자는 술뿐만 아니라 거식증에서도 헤어 나온 경험이 있는데, 이 모든 ‘중독’은 인간이라면 겪어야 할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고통을 제대로 마주할 힘을 약화시킨다는 맥락의 글을 읽으며 나는 소름이 끼쳤다.
저자는 열여섯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그래서 종종 우스갯소리로 술에서 헤어 나온 세월을 계산하여 ‘나는 아직 열네 살인걸!’이라고 말한다는 대목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아직도 어린애 같다고 느껴지는 것, 어느 순간부터 영혼의 성장이 멈춘 것 같다는 기분, 내가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느껴지는 것도 술이 한몫하는 것 같다.
요즘 특히나 술이 나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알코올 중독이 아닌가 의심을 했고, 인터넷에 떠도는 알코올 중독 자가 테스트 같은 것을 찾아내어 체크해보고는
알코올 중독과 알코올 의존증을 오가는 내 체크리스트를 보고 좌절했다가, 그렇다기엔 너무나 술에 관대하고 술을 즐기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물론 주변인들에 비해 확실히 나는 자주 마신다. 거의 매일 마시니까. 그리고 이제는 서서히 술이 나를 좀먹기 시작한 것 같다. 술 때문이라고 확신이 드는 행동 및 증상들 (단어를 빠르게 생각해내지 못한다거나, 어떤 일을 까먹는다거나, 술을 먹는 양이 점점 늘고 그다음 날 후회하며 술에서 덜 깬 기분으로 몽롱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 등등)이 늘어났다.
남들은 맨 정신으로 미래를 구축할 행동들을 하는데
(그것이 거창한 것이 아닌 운동하기, 요리하기, 화분에 물 주기, 책 읽기 정도여도 말이다. 그것은 내 몸과 정신을 좀먹지 않으니까. 오히려 쌓이고 쌓여 긍정적인 효과를 내니까.) 나는 술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예전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특별하고 남다르게 힘든 일이어서 그만한 보상이 필요하다 여겼고 그 보상이라 할 것이 술이었다. 누구보다 괴롭고 힘든 일이 많다고 느꼈고 그 괴로운 감정을 술로 달랬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다 핑계였고 그냥 술에 의존했던 것이었다. 자기 연민에 빠졌고 현실 도피했던 것이다. 그리고 매일 밤 마시는 술이 어느새 낮의 나까지 좀먹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오던 차에 이 책을 만난 것이다.
저자 캐롤라인 냅은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이며 이야기한다. 술의 무서움에 두려워 떨면서도 술을 마시며 외면하던 내게 이제껏 없던 제일 큰 경각심을 준 대상은 다름 아닌 이 책이다.
그렇다면 [드링킹]을 읽고 나면 나는 술을 끊게 될까? 아니면 좀 덜 마시게 될까? 덜 마신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
[명랑한 은둔자]의 옮긴이 김경남의 ‘옮긴이의 말’에서 처럼 [드링킹]을 읽고 술을 끊고, 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을 찾아 읽고, 그 책들이 모두 [드링킹]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해내는 그런 경지에 나도 오르고 싶다. 그래도 [명랑한 은둔자]를 통해 [드링킹]의 맛보기를 한 셈이니, 나름의 충격요법이 성공적이었으니 희망을 걸어 본다.
저자의 말처럼 중독에 빠졌다 헤어 나온 사람들은 전쟁을 겪던 세상에서 빠져나와 이전 방식의 무기(술, 굶기, 마약, 기타 그가 중독되어있던 대상)는 사용할 수 없는 세상에서 새로운 전쟁을 마주하고 있는 거라고. 하지만 이전 전쟁보다는 이번 전쟁에서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고통이 올 때, 슬픔, 외로움, 공허함, 분노, 자책, 시기, 질투와 같은 상처 받은 마음일 때 즉각적이고 안전한 처방인, 하지만 가깝게는 내일 아침을 힘겹게 하고, 멀게는 내 삶을 갉아먹는 술로 그 감정들을 다 지우고 무뎌지게 하지 말자. 또렷한 정신으로, 취했을 때보다 두, 세 배는 더 아프더라도 감내하고 오롯이 그 감정을 겪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이고 삶 속에서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차라리 중독에 빠지더라도, 활자 중독이라거나 글을 쓰는 데 집착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게 있어서 술과 책 읽기, 술과 글쓰기는 상극이니까. 결국 취하면 흐트러지고 집중력이 흐려지고 활자를 머리에 담을 수 없으니까. 그래도 최근 몇 년 간, 술을 제외하고 행복했던 시간을 꼽으라면, 한가하던 작년 가을에 퇴근 후 카페로 달려가 하루에 한 편 일기처럼 글을 쓸 때였다. 일 한 지 거의 7년 만에 얻은 규칙적인 정시퇴근, 마음의 여유는 자연스럽게 늘 갈망했고 예전에 좋아했던 일기 쓰기의 추억으로 회귀했고, 작심삼일이 될 것이 두려워 의욕적으로 강의를 신청해서 듣고, 과제하듯 글을 쓰고, 온라인 모임에 가입해 글을 정기적으로 써서 공유하고 피드백하는 활동을 했다. 그때 참으로 오랜만에 술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뿌듯함, 충만함을 느꼈다. 그 시간은 한 달 정도 지속되다가 다시 일이 바빠지면서 결국 흐지부지 되었는데, 그 끄트머리라도 잡고 싶어 브런치를 열고 작가 등록이 되어 글을 올렸던 것이었다.
이제 곧 다시 바빠지겠지만 글쓰기를 시도해보고 싶다. 오랜 짝사랑에 다시금 희망을 걸어보는 사람처럼. 간절하고도 은근하게. 얼마 전 두 달 정도 한가한 시기가 있었는데 내키지 않아 결국 쓰지 못하고 술만 마셨다. 이제와 후회가 된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시간을, 기회를 허비한 것 같아서. 하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시도해봐야겠다. 꾸준히 가늘고 길게, 은근하게 지속적으로 써 보자.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경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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