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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 Jan 05. 2021

무알콜 맥주

2021_0103

무알콜 맥주를 먹는다.
칭다오 논알콜릭이라고, 회사 언니가 추천해준지 한참 지나서야 결심을 하고 편의점에서 한 캔 사 와봐서 시음?을 했다. 무알콜이면 정말 심하게 말하면 오줌 먹는 맛이었던 기억이 있어서 맛없을까 걱정하며 한 모금 마시니 탄산이 목구멍을 강타한다. 음 그래도 맥주 맛과 비슷하다. 곰곰이 음미하지 않으면 정말 맥주인 줄 알겠다. 그리하여 온라인으로 주문을 했고 무알콜 섭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무섭게도 지난번 [드링킹]을 읽고도 그때뿐, 술은 계속 과하게 마셨다. 매일매일 먹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이제 곧 바빠질 테니 그전에 많이 마셔두자, 보상심리로,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하지만 연달아 마시니 몸이 힘들어졌고 알코올 중독이 아닌가 싶어 두려운 순간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금주는 늘 내일이었고, 그러다 어찌어찌 무알콜 맥주를 마시게 된 후로 술 마시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아예 안 먹게 된 지 열흘 째다.
무알콜이라는 건 참 재밌다.
구매를 위해 온라인 스토어를 살피다가 수많은 후기들을 읽어보니, 의외로 무알콜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캠핑 가서 운전해야 해서 술은 못 먹고 기분만 내기 위해, 술을 잘 못 먹는 사람이 파티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나처럼 술을 줄이기 위해 등등. 처음엔 무알콜이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애매하고 이상한 종류의 음료라고 생각했고, 술은 취해야 맛이지!라고 생각하던 사람으로서 무알콜의 수요가 꽤 많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긴, 요즘은 예전처럼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도 아니고 회식도 잘 안 한다. 술을 잘 먹는 것이 자랑거리, 술을 못 먹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매우 좋은 현상이다.
사실 술을 안 먹게 된 것은 무알콜이 정말 진짜 맥주 같아서라기 보다,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가 클 것이다. 역시 나는 일을 해야만 살아 숨 쉬는 인간인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슬픈데?) 과하다 싶게 술을 먹다가도 뚝 끊어낼 줄 알 때, 뭐지 하고 스스로 놀라워 돌아보면 결국 일에 몰입해 있을 때인 것 같다.
취하지도 않으면서 무알콜 맥주를 맥주 마시듯 마시는 나를 보며 놀란다. 뭘까, 술을 마신다는 것은. 취하는 요소가 사라졌는데도 습관처럼 마시고 그럭저럭 만족하는 걸 보면, 나는 알고 보니 알코올 그 자체가 아니라 술 마시는 습관을 사랑한 것일까. 무언가를 마시며 유튜브를 보거나 이렇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시간을 사랑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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