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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 Sep 16. 2019

글쓰기의 이유

대학생 1-2학년 때까지만해도 일기를 꾸준히 썼다. 지금은 1년에 손에 꼽는다.

졸업 후 일을 시작하고 지금껏 같은 문장만 반복하다 말기 일쑤였다.

'일기를 쓴 지 오래됐다.'

'일기라기엔 너무 가끔 써서 일기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처럼 남아 언젠간 글을 많이 써야지 생각했다.


왜 안쓰게 되었는지, 내가 늘 주변에 하는 변명은 '바빠서'였다.

불규칙하게 일 할 때가 많고, 일이 한참 바쁠 때는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진짜 이유는 예전처럼 글에 내 속내를 펼쳐놓기 힘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릴 적 내게 일기는 감정을 토로하는 장이었다.

초, 중학생 땐 주로 엄마에게 혼날 때 그랬다. 엄마가 혼을 내면 나는 아무말 않고 꾹 참고 있다가 방문을 닫고 일기를 썼다. 그것이 말보단 글이 편한 나만의 해소법이었다. 엄마에게 하지 못한 변명섞인 대답이나 화가 나는 마음을 그대로 일기장에 거침없이 써내려가다 보면 화가 풀리고 차분해졌다.

어느덧 일기를 쓰지 않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마음 한 켠에 드는 죄책감이나 불편함은 실은 이제는 쓰지 않게 되면서 영영 그 해소법을 잃었다는 슬픔이나 허무함인 것 같다.


또한 일기는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과 다짐을 구체화하는 연습을 하게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당시 유행하던 교환일기를 친구와 쓰곤 했는데, 거기에 내가 '사람들은 왜 내 속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할까.' 라며 이해와 오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늘어놓았더니 황당해하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책읽기와 글쓰기가 좋았던 어릴 적의 나는, 그래서 돌이켜 보면 초등학교 3학년 때 새로 이사간 학교 선생님의 걱정근심을 사기도 했다. 담임선생님은 엄마에게 진지한 걱정을 전하셨다. 친구들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다같이 뛰어나가 복도나 운동장을 쏘다니는데 나는 책만 본다고. 내겐 책 읽기가 놀이고 즐거움이었던 시절이었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내가 친구 눈에는 터무니없는 소릴 늘어놓는 아이로 보였겠지만, 어릴 적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인생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했던 것 같다. 내가 목표로 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 있으면 나는 일기장에 다짐을 적어내려갔다. 일기는 누구보다도 내 마음을 잘 털어놓을 수 있고, 인생을 잘 설계할 수 있도록 생각을 정리하고 의지를 다질 수 있게 하는 든든한 친구였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1년 휴학을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였고, 앞으로 뭘 하며 살아가야 할 지 고민이 컸다. 그 고민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핑계였다. 고민을 하는 내 모습에 한껏 취한 나는 연극동아리를 하며 연극과 사람들, 술에도 한껏 취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노는 게 좋았고,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소속감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다 동아리 선배를 사귀게 되었는데 내 일생일대의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에 대해 열심히 일기장에 써놓았던 것이었다. 이제껏 늘 그래왔듯이.

하루는 엄마가 내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는 엄하고도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다그쳤다. 남자친구 사귀느냐고. 나는 엄마의 표정으로 보아 내 일기를 본 것이 틀림없단 생각이 들어 화가 났지만 늘 그랬듯 별 말 하지 않고 참았다.  

그 날 이후 일기를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들더니, 간혹 쓰더라도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고 빙빙 겉도는 글만 늘어놓게 되어 얼마 쓰다가 답답해서 접기 일쑤였다. 유년시절 가장 좋아하던 놀이를 빼앗긴 기분이 되었다. 즐겁던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 일로 엄마를 한동안 미워했던 것 같다. 그 순간이 내겐 큰 충격이었는지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아 몇 년 간 나를 괴롭혔다.

몇 년이 지나서 나는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 꺼냈다. 내 일기장을 보지 않았냐고. 엄마는 기억이 안난다고 했다. 엄마가 내게 거짓말을 하다니! 나는 실망했다. 하지만 엄마가 내 일기를 봤다는 것은 심증일 뿐, 확실하지 않았다. 엄마의 표정에서 느껴지던 확실함이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는 내가 훗날 엄마가 된다면 내 아이의 일기장은 절대 보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일기가 아닌 거의 모든 글은 누군가가 읽어주어야 의미를 얻는다. 어릴 적 '내가 글을 좀 잘 쓰는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계기도 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서 준 반응 때문이었다. 백일장에 글을 써서 내면 상을 받곤 했다. 꼭 큰 상은 아닌, 입선이나 가작 같은 것이어서 처음엔 노력이 가상하여 주는 '참가상'이나 '격려상' 같은 건가 싶었는데, 어쨌든 써서 내면 작은 상을 자주 받으니 그래도 약간의 재능이 있나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한 번은 국어 수업 시간에 각자 글을 써서 내야 했는데, 선생님께서 잘 쓴 글을 뽑아 누가 썼는지는 밝히지 않고 읽어줬는데 그 글이 내 글이어서 혼자 기뻤던 순간이 있었다.


하기사, 순수한 놀이로 하는 것을 주변에서 잘 한다 해주고, 나아가 소득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직업이 되고 일이 되는 순간 스트레스가 찾아오고 또 다른 문제로 다가온다. 이미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일하고 있는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안다. 그래서인지 글쓰기야말로 정말이지 순수한 놀이로 남겨두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다시금 순수한 놀이의 즐거움으로 회귀해보고자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해보려 한다. 이왕이면 어떤 이야기를 엮는 것보다는(그런 재주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저 내가 겪은 것들과 생각을 글로 남기고 싶다. 일기를 쓰고 싶다. 그러다 내가 늙어서 죽게 되면 그 글을 내 자식들 또는 친구들이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보단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반응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릴 적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백일장이 그랬던 것 처럼. 반응이 궁금하고, 단지 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더 깊이 생각하고 발전하길 원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길 원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50일간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쓰는 모임에 합류하게 된 것도 내 나름대로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보석을 발견하여 갈고 닦는 마음으로, 소소한 것에서 큰 의미를 찾는 행동을 글쓰기를 통해 하고 싶다. 아니, 그런 거창한 이유 말고 아무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그저 재밌어서 쓰던 어릴 적의 나와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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