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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 Sep 16. 2019

동료의 퇴사

동료가 퇴사를 했다.

회사에서 거의 7년 간 알고 지냈다. 어쩌면 지난 7년 간 가족이나 친구보다 더 많이 봤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서 일을 시작했고, 둘 다 여기가 첫 직장이다.

그 애와 내가 와서 일을 시작했을 때는 '프리랜서'라는 이름하에 일은 프리하지 않게 하던 시절이었다. 정직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한 나쁜 제도였다. 계약직이란 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야근수당, 주말수당이 없는데도 우리는 미친듯이 새벽까지 일했다. 일은 많았고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는 이는 없었다.

우리끼리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맨 땅에 헤딩하듯 일을 해나갔다. 일의 특성상 결과물이 곧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경이로웠다.

처참한 근무환경과 박봉에 지친 동료들이 수없이 회사를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럼에도 일을 그만두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고난의 시간을 거쳐 완성된 무대를 보았을 때의 희열이 그간 고생을 잊게 할 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푹 빠져서 일했다. 그러다 동료가 먼저 정직원이 되었고, 나는 좀 더 고난의 시기를 보내다 정직원이 되었다.

그런 동료가 퇴사를 말하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있을 법한 일이라 생각하며 지냈고 자주 그런 얘길 했지만 현실이 되어 실제로 들으니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올해 초 다른 선배가 퇴사한다고 말할 때도 놀랐지만,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를 겪었고, 고난을 헤쳐나왔고 동고동락한 오랜 친구가 떠나는 느낌이었다.

동료가 마지막 출근을 하는 날 저녁, 우리는 모였다. 저녁을 먹을 장소를 찾아 예약하고, 소소하게나마 의식을 준비했다. 나는 꽃다발을, 다른 언니는 선물을, 또다른 동생은 케이크와 파티용 장식들을 준비했다. 오늘의 주인공인 동료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우리가 주섬주섬 장식의 엉킨 줄을 풀고 있는 걸 보더니 왈칵 눈물을 쏟았다. 하루종일 야외에 있어서 우리 팀 송별 식사에 참석하지 못한 내가 다른 이들에게 물으니 회사에서도 그녀는 내내 울었단다.

'기분이 어때?' 내가 물었다.

그녀는 '나갈 때가 되니 회사 사람들이 좋고 회사가 좋아보여.' 라고 말했다.

'아마 오늘만 그런 걸 거야.' 내가 말했다.

'탈출 축하해!' 우리는 그녀에게 퇴사 축하 인사를 건냈다. 그렇게 우리와 술잔을 부딪히고 난 후에도 그날의 주인공은 몇 번 더 눈물을 보였다.

'지금 회사와 이별하는 중이야.' 라고 그녀는 말했다.

또 그런 말도 했다. 퇴사를 결심하고 나니, 초창기 나와 고생하던 시간들이 많이 떠올랐다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퇴사'

늘 상상하지만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간 일하며 받은 월급으로 생활했고 필요한 것들을 얻었다. 경력도 쌓았다. 사회생활도 배웠다.

과거에 아빠가 IMF로 힘들어하는 것을 목도하며, 내가 훗날 취직을 한다면 퇴사와 이직은 필연적이겠구나 라고 어린 마음에 생각했다. 아빠 세대에게 직장이란 한 번 취직하면 평생 다니는 곳이었다. 우리 세대에겐 허락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안다. 굳이 우리세대까지 오지 않더라도 아빠 대에서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기에, 지금의 나는 퇴사와 이직이 그리 멀지 않은 일이며, 한두번으로 끝날 일이 아닐 것이며, 종국에는 별 일 아닌 연례행사같은 게 될 것임을 안다. 아니, 퇴사 그 자체보다도 근본적으로 직업에 대한 의심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되었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옷 갈아 입듯 쉬이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일이 즐겁고 재밌어서 회사를 다녔다. 꼭 이 회사를 다녀야만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결국 일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옮겨 간다. 좋아서 하는 일인데, 먼 미래에 이 일이 지겹고 싫어지면 어떡하지? 지금 일하는 원동력인 일말의 즐거움과 희열이 아예 사라지면 어떡하지? 지금껏 10년 남짓을 즐거워서 해 온 일이다. 하지만 즐거움의 크기만큼 괴로움도 크다. 변수가 있고, 방송이 끝나는 그 날까지 늘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초조해하며 들고 다니게 된다. 밤늦은 시간 불쑥 전화가 오기도 한다. 멀리 여행을 가거나 떠나지 못하고 대기상태여야 한다. 갑작스런 야근이나 장거리 운전을 해야할 때도 있다. 사실 그런 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은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사람들과의 부딪힘이 가장 힘들고 괴롭다. 가뜩이나 내향적인 내가 (이렇게 말하면 동료들은 '네가?' 라고 반문하지만, 어릴 적에 비해 많이 외향적이 됐지만 나의 본질은 어쨌든 내향인이다.) 사람들을 끝없이 대면해야하고 싸워야 하며, 내 디자인을 연출 감독이 마음에 들어 하도록 머리를 싸매고 디자인하고 설득해야한다. 급박한 촬영 상황 속에서 미술적인 부분들을 빠르고 정확하고 최선을 다해 해결해주어야 하고 그 속에서 나의 눈에 아름다워보이고 만족스러운 미술을 하려고 애쓰다 보면, 첫 방송이 시작할 때쯤에는 지친 몸과 마음을 심기일전하여 다시 기운을 차려야만 하는 것이다. 마지막 방송까지 잘 달릴 수 있게.

내 일의 비중에서 콩알만큼이지만 엄청나게 강력한 요소인 '즐거움' 하나로 일을 하고 있는데, 훗날 그 즐거움이 사라진다면,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일하기엔 불규칙,불합리, 부조리가 감당 할 수 없을 만큼 크다면 그 땐 어찌 해야 할까?

재밌는 건 시대의 흐름을 따라 상황이 점차 변한다. 영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방송계도 변화가 조금씩 보인다. 훨씬 일찍 몇 개월 전부터 촬영을 준비하고 시작한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한밤중 연락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이건 또 다른 문제지만 카톡으로 대화하고 공지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전화 통화 횟수가 줄었다. 이건 우리 세대와 더 어린 세대로 갈 수록 특징적인 것 같다. 우습게도 난 이런 상황이 좋다. 역시 말보다 글이 편한 나는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보다 카톡 감옥이 낫다고 해야할까.

앞으로 나는 점차 어떻게 변화할까. 내가 하는 일은 또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과거의 나에게 말하고 싶다. 그렇게 미련스럽게 참고 견디지 말라고.

하지만 내가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난 똑같이 행동할 것 같다. 그게 내 스타일이고 성격인 걸 어쩌겠는가.

하지만 확고한 신념을 가질 것, 아닌 건 아니라고 말 할 것. 이 생각은 늘 마음속에 지니고 있다. 발전하고 더 나아지려면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더군다나 변화하는 세상 앞에서 한 곳에만 머무를 수 없다는 게 당연하기에 더더욱 내 태도를 확실히 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게 참으로 그게 어렵다는 것을 또한 잘 안다. 참는 것보다 화내고 쟁취하는 게 내겐 더 어렵다.

만남도 우연히, 이별도 우연히 찾아온다. 퇴사하더라도 어디서든 또 보겠지만 그래도 같은 회사 안에 있는 것과는 느낌이 또 다를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울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이별해야 한다. 늘 마음속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이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내가 관심있게 바라보던 분야와 비슷한 일을 하게 되었다.하지만 그 과정과 여기로 흘러들어오게 된 계기는 우연한 것이었다. 우연히 이 일을 시작했듯, 나의 여정이 또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그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현재에 충실하기로 했다. 미래를 준비하자니 현재의 상황이 너무 바쁘고 팍팍하다면, 현재에 최선을 다 하되 늘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로. 그리고 늘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나그네나 여행자의 심정으로,홀연히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기르기로. 많이 어렵겠지만 노력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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