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30.
어제 오랜만에 방 안에서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을 찾아냈다. 원래는 [소설가의 일]이 눈에 띄어서 몇 페이지 읽다가 [청춘의 문장들]이 읽고 싶어졌다. 부끄럽게도 김연수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고, 그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그 중 맨 처음 접했던 [청춘의 문장들]을 가장 사랑한다. 젊은이의 풋풋함이나 예민함 그 때만 생각할 수 있는 깊고 맑은 생각들이 느껴지는 문장들을 사랑한다.
그런데 오랜만에 펼친 책 첫 마디는 ‘이제 나는 서른다섯이 됐다.’
고등학생, 대학생, 갓 작가로 데뷔했을 때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저런 문장이 있었는지 잊고 있었다. 아마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게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였던 것 같다. 아니면 조금 더 지나서 회사 다니던 이십대 중반이었던 것도 같다. 스물다섯쯤의 내가 서른다섯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겠나. 서른다섯이 되어 펼친 책에서 마주한 서른다섯. ‘청춘’ 이란 단어가 낯설게 다가온다.
서른다섯이라하면 아직 창창한 나이라고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른다섯 여자가 되고 보니 물리적인 면에서 딱히 젊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여자는 어쩔 수 없이 출산을 생각해야하니까(의향이 있다면) 그렇다손 치더라도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딱히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그럴수록 그런 생물학적인 나이와 상관없는 정신적인 것을 쌓아나가려 하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뭘 많이 읽고 쌓고 수양했나? 그건 또 아니다. 요즘 시간 여유가 되니 이것저것 읽고 듣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나의 무지를 깨닫는 중이다. 전에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나의 무지를 당연시 여기거나, 일 관련된 걸 얻었으니 반대로 이쪽은 부족할 수 밖에 라며 등가교환 했다고 여기곤 했다. 요즘 드는 생각은 ‘무지를 부끄러워 하는 마음’ 도 알아야 가능한 거구나 싶다. 무지할 땐 무지함을 모르니 부끄럽지 않은 거다. 그리고 조금씩 읽어나가고 알아나가다 보면 습관처럼 그 행동에 탄력이 붙어서 연쇄작용처럼 더 많이 읽고 찾고 시야를 확장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일단 인풋을 늘릴 수는 있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흔들리던 고등학생, 대학생 때 그래도 무언가 충만했던 것은, 그런 앎에 대한 의지, 욕심껏 그러모아도 다 소화도 못할 걸 알면서 책을 자꾸만 펼치며 조금이라도 세계를 확장하고자 했던 그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연수가 [소설가의 일] 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어쩐지 내 인생에 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처럼, 내 생에 특정 책들을 읽지 못하고 죽으면 억울할 것 같다는, 청소년 때의 심정을 요즘 오랜만에 다시 느낀다. 요즘은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어쩌면 작가들도 저렇게 마음 먹고 읽어야 하는 작품이 명작이라는 것에 대해 모순과 위안을 느끼며, 그저 읽고 싶다는 열망이 돌아온 것에 기뻐하는 요즘이다.
일을 시작한 스물다섯부터 지금 서른다섯까지, 일만 열심히 잘 해와서 이만큼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다른 영역에서는 구멍이 뻥 뚫린 느낌이다. 일이 아닌 어떤 다른 면에서는 통째로 날린 10년을 안타까워하고 포기하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메꿔가보자 생각한다. 책 하나를 진득하게 읽는 게 점점 힘들어지지만 말이다.
스물다섯인 나는 그때 왜 그리도 [청춘의 문장들]을 사랑했을까. 그건 그토록 고요하게 내면을 들여다보고,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작가의 시간들이 내 어린시절을 닮아서였을 것이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 책을 읽으며 감상에 젖던 그 시간을 떠올리며 마음의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서른다섯인 지금에 와서 안다. 청춘의 문장들이란 작가가 예민하게 성찰하고 건져낸 의미라는 것을. 가장 섬세하고 예민하던 시절의 기억을 이토록 여운이 오래 남을 이야기로 만든 것 또한 섬세하고 예민한 작가의 능력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 온라인의 세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집중의 시간’이 부족한 우리에게, 어찌보면 시대착오적인 저 고즈넉함이 실은 진정한 내면 성찰의 과정이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여러 갈래로 쪼개야 할 만큼, 집중의 시간을 부러 만들어야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노력해야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잘 안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읽은 [청춘의 문장들]이 거의 태초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