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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의 먼지 Jul 11. 2022

책, 들여다보기 #1.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초록창에 '왜 살지?'를 검색한 날.

 얼마 전 나와 아주 친한 친구, 아니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같이 한 친구가 찾아왔다. 그 친구는 늘 내 곁에 있었으며, 주위를 맴돌았고 나를 장악했으며 어떤 시기엔 아예 나타나지 않기도 했다.

우울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자신의 동반자인 불안을 같이 데려왔다. 

 아주 오랜만에 잠들기 전 침대에서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고 그 둘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유 없는 불안, 이유 없는 우울.

 나는 요즘 참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 심하게 공황발작이 왔던 식당도 자신 있게 도전해서 들어갔고, 사람이 많은 까페도 갈 수 있었다. 하나씩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올 줄 몰랐다. 그래서 갑자기 약속을 많이 잡고, 야외 활동을 많이 하면서 보낸 요즘이었다.


오늘은 '침착한 우울'의 대명사.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에서 나를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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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의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비참한 패자 또는 악덕한 자를 지칭하는 말 같습니다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음지의 존재였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이 세상 떳떳하지 못한 놈으로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다정한 마음이 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다정한 마음'은 저 자신도 황홀해질 정도로 정다운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다자이 오사무 -디 에센셜 중 인간실격-184p,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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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음지의 사람'일까? 요즘 말로는 '아웃사이더', 그 중에서도 '자발적 아싸'를 지향하는 나는 아픈 누군가를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곤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정다운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너무 잘 안다. 나 역시 음지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같은 느낌의 사람을 만나면 한없이 다정해진다. 


 그날 밤 나의 동반자의 증언에 따르면, 내가 엄지 손가락을 빨면서 잠들었다고 했다. 울어서 빨개진 코와 입 속으로 쏙 들어간 엄지. 간헐적으로 쪽쪽 빨아대는 소리. 내가 약을 먹고 깊이 잠들었을 때 몰래 손가락을 빼줬는데, 마치 갯벌에서 개불 빼는 느낌이랄까? 라고 했다. 심지어 '퐁!'하고 맑은 소리도 났댔다. 뭐가 그리 불안해서 어릴 때도 안 하던 짓을 서른여섯이나 먹어서 하게 된 걸까.


 어쨌든, 심란한 밤을 지내고 아침 7시에 눈이 떠졌다. 그리곤 핸드폰을 열어 초록창에 '왜 살지?'를 검색했다. 결과는 뭐, 자살 예방센터 전화번호와, 당신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와 같은 문구들이 가득했다. 나는 하하하하하 웃었다. '참신함이 없네, 참신함이 없어-' 하며 물 한 컵 벌컥벌컥 마시고 곧장 책장으로 가 '다자이 오사무-디에센셜'에 실린 '인간실격'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담담함 속에 담긴 우울한 필체를 좋아한다. 처절하게 우울한 외로움이 아닌, 그저 난 이래~하면서 술술 던지는 우울. 어쨌거나 다자이 오사무는 실제로 5번째 자살기도에 성공해 버렸다. 그와 나는 어느 부분은 맞고, 어느 부분은 틀리다. 그렇게 아침시간을 보내고 나니 시간은 정오였고 나는 남편을 깨워 밥을 먹었다. 이런 감정일 때도 배는 고프구나. 먹으려고 사나? 먹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지. 그럼 사람은 돈을 벌려고 사나? 그냥 먹고 살려고? 평생 일만 하려고? 돈 때문에 사는 건가? 이유가 너무 하찮은데. 평생 일하고 먹고 살다 죽긴 싫은데... 그럼 왜 살지? -로 연결된, 어떤 행위 하나하나가 다 '이럴 거면 왜 살지?'로 끝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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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존재는 왜 하루 삼시 세끼 밥을 먹는 것일까. 정말 모두들 엄숙한 얼굴로 먹고 있군. 이것도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어서, 가족이 삼시세끼 시간을 정해 놓고 어두컴컴한 방에 모여 밥상을 순서대로 늘어놓고 먹고 싶지 않아도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밥알을 씹는 것은 집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영혼들에게 기도하는 행위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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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니까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만큼 저에게 난해하고 어렵고 협박 비슷하게 울리는 말은 없었습니다.


즉, 저에게는 '인간이 목숨을 부지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그때껏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 불안 때문에 저는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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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괴로움, 그저 밥만 먹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해결되는 괴로움, 그러나 그 괴로움이야말로 제일 지독한 고통이며 제가 지니고 있는 열개의 재난 따위는 상대도 안 될 만큼 처참한 아비지옥일지도 모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 치고는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도 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괴롭지 않은 게 아닐까? 그런 사람들은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한 번도 자기 자신에게 회의를 느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편하겠지. 하긴 인간이란 전부 다 그런 거고 그렇다면 만점인 게 아닐까. 모르겠다...... 밤에는 푹 자고 아침에는 상쾌할까? 어떤 꿈을 꿀까?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돈? 설마 그것만은 아니겠지. 인간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돈 때문에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아닐 거야. 그러나 어쩌면...... 아니, 그것도 알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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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디 에센셜 중 인간실격-143p~149P,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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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는 안다.


그냥, 그냥 사는 거다. 우린 어쨌거나 태어났으니까.

요즘 내가 우주 영상에 집착하는 이유와, 지구의 역사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유도 관련되어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결국 인간은 하찮은 존재임을 증명하고 싶은 건데, 나 자신은 하찮고 싶지 않은 거다.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인간과 삶에서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편인데, 나는 뿜어내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단념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요조처럼 나도 뭔가를 끝내 단념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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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런 도깨비 그림을 그리고 싶어."


인간을 너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무시무시한 요괴를 자기 눈으로 확실히 보고 싶어 하는 심리. 신경이 날카롭고 쉽게 겁먹는 사람일수록 폭풍우가 더 강하게 몰아치기를 바라는 심리. 아아, 이 일군의 화가들은 인간이라는 도깨비에게 상처 입고 위협받다 끝내는 환영을 믿게 되었고 대낮의 자연 속에서 생생하게 요괴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익살 따위로 얼버무리지 않고 본 그대로 표현하려 노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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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릴 거야. 도깨비 그림을 그릴 거야. 지옥의 말을 그릴 거야."라고 왠지 모르지만 아주 낮은 목소리로 다케이치에게 말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디 에센셜 중 인간실격-171p,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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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갈망하던 도깨비 그림. 하지만 외설에 가까운 싸구려 그림(만화)만 그리게 된 요조.


 우리는 살면서 작은 이유에서 살아야겠다는 의미를 알아가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소울'을 보면 떨어지는 단풍 씨앗, 맛있는 피자 한 조각, 아름다운 노을과 반짝이는 나뭇잎 같은 것들에서 조차 말이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면..? 빨리 그것을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아직도 마음의 감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아 환절기라 그런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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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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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산하가 눈앞에 보이는 듯해서 저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디 에센셜 중 인간실격-278p,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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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에 끌려와 갇히게 된 요조. 그리고 아버지의 비보를 듣는데, 그때부터 요조는 놓았던 삶을 더 놓게 된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요조에게 '큰 고뇌의 항아리' 였던 것이다.  고뇌의 큰 항아리. 인간이라면 크던 작던 가지고 있을 고뇌의 큰 항아리. 나는 그 항아리를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하곤 하는데, 희망이 나오지 못할 것이 두려워 아예 마주하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 골이 점점 깊어져 결국 나는 억지로라도 그 항아리를 열어야 했고, 결국은 그것들과 부딪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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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이상해서 약상자를 잘 살펴보니 그것은 헤모노틴이라는 설사약이었습니다.

저는 똑바로 누워서 배에 유단포를 올려놓고 테쓰에게 잔소리를 하려고 했습니다.

 "이봐, 이건 칼모틴이 아니야 헤모노틴이지."

 그렇게 말하다 말고 후후 웃어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폐인'이란 단어는 희극 명사인 것 같습니다. 잠들려고 먹은 것이 설사약이고, 게다가 그 약의 이름은 헤모노틴이라니.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까지 제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살 이상이로 봅니다.

   [다자이 오사무-디 에센셜 중 인간실격-280p,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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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헤모노틴'이 무슨 뜻인지 너무 궁금해졌다. 요조는 호리키와 단어를 정의하는 놀이를 하곤 했는데, 헤모노틴도 그중 하나 일 것 같아서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헤모노틴의 어원에 대해 설명한 곳이 없었고, 이렇게 저렇게 검색을 하다 보니 '헤몬'이라고 검색했는데 へいもん [閉門] 이렇게 일본어로 나오는 게 아닌가. 

그 뜻은,


1. 폐문.

2. 문을 닫음. (↔開門(かいもん))

3. 두문불출함((江戸 시대에, 근신하는 뜻으로 그렇게 함; 또, 벌(罰)로 과하는 형(刑)의 하나)).


완전한 나만의 해석으로는 요조는 '헤모노틴'에서 '헤몬'을 찾은 게 아닐까. 내가 요조라면 그 부분에서 허탈하고 내 처지 같아 웃으면서 눈물이 났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초록창에 검색한 것처럼 허탈한 웃음을 지은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그의 인간세계에서 깨달은 진리.


 '모든 것은 지나간다.'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당신의 우울도 나의 불안도, 우리 모두의 힘듦도. 그저 시간이 필요 할 뿐, 모든 것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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