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 - 조우리 장편소
책 제목,
너무 길다.
글자수 제한 때문에 얼.슬.보라고 적었지만 이 책의 풀네임은
[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 이다.
나는 제목을 듣고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놀랍도록 가까운]이 생각났다.
(두 작품 다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남은 가족들의 삶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소설은 문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가버렸다고 믿는 한 마법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동생 혜진이가 실종 되는데 여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실종된 혜진이를 찾으러 다니는 부모님, 그리고 방치 된 현수.
혜진이의 실종에는 분명 각자 나누어야 할 책임의 무게가 뒤따랐을 것이다.
현수에게 따라붙는 만성 소화불량이라던가, 어머니의 우울증, 불면증, 신경쇠약과 알콜중독증세까지.
이세상의 모든 슬픔을 짊어졌을거라 생각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방황을 하고 가족의 삶은 산산조각 나버린다.
현수는 혜진이 찾는것을 포기하겠다는 아버지에서 인간도 아니라며 화를 내고 혼자 혜진이 찾기에 나서는데...
한편, 혜진이를 최근까지도 봤다는 믿을 수 없는 제보를 받고 찾아간 놀이터.
내 유년은 작은 얼룩 하나 없이 완벽하게 보존된 채 그곳에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느긋하게 움직이고 평화로워 보인다. 나도, 우리가족도 이 풍경 속에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다 같이 둘러앉아 예능 프로를 보며 짜장면을 시켜 먹던 저녁이 있었다. 놀이터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나와 혜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부모님이 있었다. 그네를 아무리 높이 타도 두손으로 줄을 꼭 잡고 있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으라라 믿었던 내가 있었다. 이제는 나조차 믿기지 않는, 폐허가 된 기억이었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현수의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듯했다.
소설 속에서도 속을 잘 드러내지 않던 현수가 놀이터를 보며 떠올렸을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어린시절의 찬란했던 기억.
이제는 추억뿐인 그 놀이터.
현수의 처지를 이해하는 한사람, 미스터 서프라이즈.
무려 현수가 다니는 센터의 센터장이자 '서프라이즈'를 보며 기적을 믿는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다.
이들은 얼마 살지 못하는 '개'를 함께 키우며 우정을 쌓아가는데 사실 이들은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사이이다.
그리고 현수의 삶에 갑자기 풍덩! 들어온 한 사람. 수민.
쌍둥이이자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수민이는 자기의 영혼의 반쪽이 날아가 버리것 같다며 오빠를 되찾고 싶어한다.
"너 불운의 속성이 뭔지 알아? 피하고 숨으면 더 찾아다녀. 자기를 의식하는 사람들한테 애정을 가지고 있거든. 아주아주 외로운 놈이야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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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다가오면 움직여선 안 돼. 반응하지 말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지. 아침밥 먹고 점심밥 먹고 저녁밥 먹고. 최대한 그대로 지속하는 거야. 모든 것을. 알겠어?"
도망치지 않아야 도망칠 수 있다고 선생님은 덧붙였다.
동생을 잃은 현수, 딸을 잃은 선생님 그리고 쌍둥이인 오빠를 그리워하는 수민.
이들은 같은 슬픔을 등에 업고 살아간다.
그리고 현수의 동생이 돌아오길 모두가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자신의 딸이, 자신의 반쪽인 오빠가 돌아오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묵주를 건네주던 아주머니도 그런 마음을 현수에게 전달했다.
어떤사람들은 타인의 아픔에 더 크게 공명한다. 세상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과 바깥 세계 사이의 경계가 남들보다 희미하다. 괴로울 텐데. 하지만 고통의 전이라는 감각을 아는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묘하게 위로가 된다. 묵주를 만지작거리며 아주머니와 엄마를 연결시킨 슬픔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다.
슬픔이 넘실대는 성장소설이다.
어른이 되면 괜찮아질거야. 따위의 값싼 위로의 말을 건네기 보단 니가 어른이 되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을거야. 대신 슬픔과 함께하는 방법을 알려줄게 라는 메세지를 주는 소설이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선생님은 말했다. 사람들은 빈방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소중한 것이 빠져나가 버렸지만 버릴 수 없는 빈 방이 누구나 하나쯤은 있는거라고. 선생님의 말에 다 동의할 수 없었지만 어딴 사실 하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불행이 다가와도 절대 도망치지 말라던 선생님의 충고를 받아들여 사고가 났던 호텔로 간 현수.
개의 장례식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 가게 된거지만 현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슬픔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본인에게 닥친 현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받아들이는 장면은 울컥하게 했다.
온몸에 감기는 습하고 미지근한 바닷바람이 지난 기억을 흔들어 깨웠다. 마치 어제처럼. 손상되지 않은 선명한 영상의 한 장면이 파도처럼 다가왔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그날의 습도, 햇볕, 가족들의 웃음소리, 바람에 펄럭이던 옷자락의 움직임까지 이렇게나 생생하다.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가슴이 뜨겁고 아프다. 기억이 이토록이나 물리적인 고통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주먹을 세게 쥐었다. 도망가지 않으려고.
결국 현수는 해냈고 죽을만큼 힘들땐 힘을 빼라던 선생님의 조언대로 현수는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뒤이어 혜진의 유골이 발견되고 가족들은 그동안 참아왔던 슬픔을 다 토하게 된다.
그동안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던 현수 마저 모든 슬픔과 아픔을 장례식장에 털어놓고 나온다.
그리곤 엄마 품에 안겨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둡고 폭풍우 치는 밤이었어."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