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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Mar 06. 2022

경쟁 좋아하세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꿈이 컸다.

명예로운 사람, 좋은 간판을 단 사람이 되는 상상을 줄곧 해왔다. 그런 사람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고, 성실히 하고, 시키는 것을 잘하고, 칭찬을 많이 받으면 그런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우수한 사람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3년을 성실히 보냈다. 고등학교를 마치면, 내가 원하는 나쁘지 않은 대학과 학과의 합격 서류가  손에 들려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했다. 비록  번째 수능을 망쳤더라도 21살의 나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가르침을 몸소 느끼며 캠퍼스를 거닐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재수를 했음에도 원하는 대학은 가지  했다.  다음엔  신념과 공부를 위해 끝내 내걸만한 이름의 대학원에 붙어서, 장학금을 받으며, 힘들겠지만 자랑스러운 유학 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꿈도 좌절되었다.


세상이 자꾸만 나의 생각을 엎질렀다. 그래서 혼란스러웠고 경쟁이 너무 싫었다. 모두가 노력을 하는데 한 줄로 세우면 성과를 얻는 사람은 소수였다. 그리고 그건 '노력'만으로 되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 타고난 머리가 좋아서, 집안 환경이 좋아서 성과를 얻기도 한다. 나는 집안 환경도 나쁘고, 타고난 머리가 엄청 좋은 편도 아니었고, 운이 좋은 편도 아니었으니까 더 노력했다. 이상하게 나이를 먹을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나는 성과를 얻지 못 했으며, 칭찬보다 위로를 받게 되었다.


사람들은 경쟁에서 패배하면 좌절한다. 그 좌절은 자신을 갉아먹고 주위를 괴롭게 할 만큼 아프고 치명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에 질려버렸다. 경쟁하지 않고 살고 싶어한다. 어른들과 사회가 주입시킨 노력제일주의에 배신감을 느낀다.


그런데 나는, 경쟁을 이렇게 미워하는 만큼, 누구보다 경쟁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경쟁에 뛰어들 자격을 잃었을 때 알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 자격. 난치병 선고를 받고 내 몸 상태가 언제 어떻게 나빠질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정신과 체력을 많이 써야하는 대학원 입시 준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병원비가 많이 나갈 수 있고, 한 번 크게 아프고 나면 회복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들어 해외 유학 생활을 할 수 있을 지 불투명해졌다. 컨디션을 챙기면서 서둘러 고용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게 현실적이었다.


GRE 시험을 준비하고, 혼자 독서실에 아침부터 밤까지 처박혀서 공부하고, 해외 대학원 컨택이 두려워서 눈물 날 때보다, 더 이상 나는 자유롭게 도시와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더 두렵고 슬펐다. 경쟁에서 지는 건 괜찮다. 처음이야 힘들지 두 번 세 번 지고 나면 회복 속도가 빨라진다. 패배가 괜찮은 이유는 이것이 나의 경쟁의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 번이고 도전하면 되니까. 그러나 더 이상 남들과 경쟁하는 트랙에 설 수 없다는 건 다르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건 경쟁에서 벗어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반강제로 경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아픈 몸을 잘 관리해가면서 도전을 계속할 수도 있지만 그랬을 때 다가올 최악의 시나리오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 그리고 현실과 타협 가능한 이상에 가까운 삶과는 다른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감당하기 싫었던 것을 감당해야 하게 되었고, 내가 바라보지 않던 장점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내가 인생을 복권 당첨을 꿈꾸는 마음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히 로또를 매주 사모으며 한 번의 당첨으로 나의 통장 잔고가 올라가는 것처럼, 나의 가치가 상승되길 바랐던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원에 가는 것으로. 그러니 이제는 한 순간의 벼락 같은 성취와 빡센 경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나의 가치를 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가치를 하나하나 찾고 만들어 가야 한다. 남들의 눈길을 쉽게 사는 타이틀이 없어도 나는 여전히 가치있고, 나의 인생은 천천히 소박하게 진보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아가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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