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오 Dec 20. 2021

ACC FOCUS <포스트 휴먼 앙상블>을 다녀오면서

전시의 매력을 되돌아보는 시간



전시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언제부터 전시의 매력을 알게 되었느냐 하면... 2019년부터인 듯 하다. 19년 초, 박물관과 전시 투어를 목적으로 간 서울 여행에서 여러 박물관과 갤러리를 다니며 본 전시들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 해 겨울 유럽 여행을 가서도 유명한 갤러리와 박물관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갑자기 '전시는 좋구나!' 하고 깨달았던 건 아니다. 전시를 즐거운 마음으로 보기까지 가랑비 옷 젖듯 예술에 한발짝 가까워질 수 있었던 계기가 있다. 바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다.



2015년에 완공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광주의 시내(핫플..?)라고 불리는 충장로에 위치해있다. 처음 설립되었을 때 무척 현대적이고 세련된 건축물이 놀랍고 신기했다. 그 땐 건물이 높게 들어선 게 아니라 밑으로 파고 드는 구도인게 (눈에 띄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볼수록 마음에 든다. 카더라지만 당시 건축가도 무등산의 전경과 주위 전망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지하로 팠다고 한다. 만약 높은 건물이 들어섰다면 주위가 그늘져서 분위기가 우중충해졌을 것 같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시아 작가 및 문화에 대한 전시가 많다. 나는 충장로에 놀러갈 때면 종종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ACC에 들러 전시를 보곤 했다. 난해하고 어려운 내용도 많았지만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고 체험하는 경험 자체가 신기하고 재밌었다.


처음으로 ACC에서 전시를 봤던 때부터, 나는 전시라는 게 소위 교양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배워갔던 것 같다. 그곳엔 한국의 역사 관련 전시도 있었고, 아시아 여러 문화권이나 예술품 전시도 있었고, 전지구적 가치를 담은 전시도 있었다. 야외 전시, 비디오 아트, VR 체험 등등 종류도 다양했다. 대부분 무료전시였다.


어제 주말에는 <포스트 휴먼 앙상블> 이라는 전시를 보고 왔다. 인간과 비인간이 어떻게 조화를 아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 에 대한 내용으로 내가 좋아하는 주제였다.



문화창조원 3, 4전시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무료 전시임에도 전시 작품의 양도 많고 메세지도 풍부해서 개인적으로 무척 만족스러웠다. (이 글을 얼마나 많은 분들이 보실 지 모르겠지만.. 많이 보러 가셨으면 좋겠다.)


몇 년 전까지 ACC 전시를 볼 때 작품 설명을 해주는 분들이 안 계셨는데 (정해진 시간에 큐레이터 분들만 활동하셨다) 최근에는 전시장 내 스태프분들이 작품 설명도 해주신다. (작품이해도가 올라가서 좋다)


사실 전시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할 때 고민이 많았다. 정보와 더불어 내 생각을 줄줄이 써내면 나중에 전시를 보러 간 사람들이 재미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마치 영화 스포일러 당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전시는 일종의 방탈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시는 거대한 추리의 장이다. 주제만 알고 찾아간 전시장에 있는 다양한 작품들은 우리가 제목이나 작품의 요소를 가지고 해석해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했다고 해서 그게 틀린 게 아니라 나만의 느낌인 것이다. 혹은 이 작품을 봤을 때 내가 왜 유난히 눈길이 가고 마음에 드는 지 나를 돌아보고 작품의 어떤 요소가 마음에 든 것인지 (이유를 찾지 않고 감명깊은 느낌에 집중하는 거 자체로도 좋다) 생각해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김제민, 끈질긴 잡초 생명력 기르기


그래서 <포스트휴먼 앙상블> 전시를 돌아보며 내가 느끼는 전시의 가치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전시장은 입장하면 힘들어도 끝까지 돌아보기를 권한다. 전시장 마다 주제가 다르고, 전시장 마다 가지고 있는 소주제가 모여서 거대한 주제가 되는데 그걸 합쳤을 때 느낌이 굉장히 짜릿하다. 그리고 작가들마다 주제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나 표현법이 다른데 그 참신함에서 얻는 충격들이 신선하고 좋다. 때론 그들의 천재성에 감탄하기도 한다. 마치 새로운 요리인데 먹어보니까 맛있네! 해서 여러 식당을 다니게 되는 것처럼. 우리 뇌도 평소에 받는 것과 다른 자극을 받으면 좋아한다.


나는 전시를 보는 과정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몰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을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고, 빠르게 새로운 정보가 제공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뇌는 쉴틈이 없다. 정말 바쁘게 끝없이 자극을 주입받는 게 익숙해지다보니 우리는 멈춰서는 게 불안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다보니 오로지 한 부분에만 몰입을 하는 행위는 오히려 바쁘게 생각을 전환하는 뇌의 입장에서는 휴식이 된다. 오로지 정신만으로 해내야하는 명상이나 몸이 힘든 운동보다 사방에서 몰입을 도와주는 전시는 쉬운 난이도의 몰입이다. 10분, 20분씩 한 작품을 뜯어보고 감상하는 일 자체가 잡다한 생각이나 자극을 원하는 충동을 잠재워주는 효과가 있다. 전시장에서 그 주제에 대해 빠져있다가 나오면 현실의 고민들이 좀 흐려지는 기분도 든다. (주제 바이 주제지만)


이경하, 공터


또한 전시는 예술의 영역이므로 주제들이 일상적인 부분과 직결되지 않을 수 있다. 그 점에서 내가 때로 현실에 찌들어 있다고 느낄 때 전시가 시야를 넓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전시도 일종의 설득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건드리는 설득 과정인 것이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공감을 하게 되고, 아주 신선하고 생각치 못 한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와 다른 생명체를 공감하게 되면서 삶의 가치관을 만들어간다.


<포스트 휴먼 앙상블> 미생물, 식물, 인간이 기피하는 여러가지 오염생물, 멸종위기 동물, 바이러스, 인간 등등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시를 돌아보고 오는 길에  퀄리티 좋은 전시를 무료 전시로  이유가 뭘까? 생각했다. 무료라서 나는 너무 좋은데, 굳이 무료로  이유가 뭘까? 사실  고민은 얼마 후에 뒤집혔다. 이런 전시니까 무료로 해야 하는  아닐까?


마치 코로나 백신과 같았다. 지구에서 돈이 많고 안전을 보장받기 쉬운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백신을 맞는다고 해서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게 아니듯.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백신을 맞아야 우리가 안전할 수 있다는 말처럼. 세계적인 문제들, 보편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전시는 빈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방문해서 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왜냐하면 전시는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쁘지 않은 침투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투자한 만큼 곧바로 이윤으로 돌아오는 분야는 아니지만, 예술이 던지는 메세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쌓인다. 비엔날레에서 쓰레기로 만든 고래 모형을 보고 감탄한 아이는, 자라나면서 고래 모형은 잊어버릴지 몰라도 쓰레기로 만든 거대한 고래를 봤을 때의 감정은 기억한다. 그리고 나중에 쓰레기로 해양 생물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아마 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고, 많은 사람들이 느낄수록 전시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많이 기억되고, 그 사람들이 움직이는 사회에 적용된다. 그것이 좋은 전시가 무료로 제공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우리가 전시를 즐길수록 좋은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포스트 휴먼 앙상블>이라는 전시가 무료 전시의 가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술이 발전하고,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더 확장된 능력을 갖춘 포스트휴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배운 사람들이 더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바이러스도, 동물도, 식물도 인간과 함께 지구를 살아가는 물질이고,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인식하면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듯.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개인들도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테니까.










작품에 대한 기록



페이 잉 린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VIROPHILIA 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낸 것인데 바이러스애호가 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바이러스애호가들을 위한 요리책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인식을 꼬집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위트있다고 생각했다.

아래에 보면 이 레서피로 요리를 해서 직접 사람들이 먹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인체에 무해한 요소들이고

실제로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맞는데 그것을 바이러스를 중심으로 표현했을 뿐이라는 것.

코로나 이후로 '바이러스'에 대한 강박과 편견이 강해지는 풍토에 대해 되짚어보는 것 같다.



4전시관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주제로 작품들이 전시된다.

조은우, AI, 뇌파 그리고 완벽한 도시

개인적으로 재밌었다.

뇌파를 이용해서 안정과 휴식 상태를 의미하는 알파파 상태를 조명의 색상 변화로 알 수 있는 전시이다.

감정을 느낄 수 없는 AI가 인간의 알파파를 측정하고 그것을 AI가 조명 색깔로 나타냄으로써 AI 또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므로 완벽한 도시인가보다 생각했다.

인간의 감정은 우리가 볼 수 없다. 그것을 AI가 학습하고 시각화하여 각각의 다른 사람들이 인간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포스트휴먼 앙상블이 아닐까, 하는 메세지로 받아들였다.

시각화 하는 표현 방법은 전시 작품마다 달랐고, 체험하는 작품이 많았다.

그래서 3전시관(비인간과의 조화), 4전시관(인간끼리의 조화, 인간과 기술의 조화)를 합쳐서 포스트휴먼 앙상블을 말하는 게 아닐까 ㅎㅎ 와 재밌다 하면서 동생이랑 박수치면서 왔다.





작가의 이전글 <콩트가 시작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