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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파도

아버지의 불안과 외할머니의 조울증 그리고 나

by 무오


임용 1차가 끝났다. 시험이 다가오기 일주일 전부터 나는 마음이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을 느꼈다. 그때 유일하게 붙잡아준 것은 규칙적인 생활이었다. 그래서 더 그 규칙을 고수하고자 노력했고 이런저런 규칙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식사 시간이 따로 없는 시험 일정에 맞추어 쉬는 시간마다 간식거리를 먹었다. 어찌할 바 모르는 공허함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아도 이것저것 입에 집어넣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소화불량 상태가 되었다.


'어쩌면 아빠도 이런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늘 만성 변비에 속이 답답하다고 툴툴대면서도 간식거리를 손에 쥐고 살던 아빠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문득 생각했다. 아빠는 자신의 욕구와 감정의 척도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중년이 되어 불룩하게 나온 아빠의 배는 인생의 후반기에 찾아든 온갖 불안과 공허함을 다루기 위한 창고방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어찌할 줄 모르겠고, 깊은 사색을 할 여유가 없는 내가 그냥 이 어딘가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감각을 그저 음식으로, 무언가를 씹고 삼키는 일로 대체하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보면 세대라는 것, 가족이라는 건 정말로 신기하고 기묘하다. 너무 다르다고 느끼지만 DNA상 가까운 존재와의 교집합이 내 삶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나는 그것을 일찍이 엄마로부터 느꼈고, 30대에 들어서면서 아빠로부터 느꼈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외할머니로부터 느껴왔는데, 그것을 요즘 오랜만에 느끼기 시작했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조울증을 진단받으셨다. 조울증은 감정의 기복에서 비롯되는 병으로, 조증삽화 및 경조증삽화와 주요 우울삽화가 규칙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대인관계 패턴이 안정적이지 못하고, 생활주기도 불규칙적으로 되기 쉽다. 에너지 수준이 올라갈 땐 일을 벌이고,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그 주기가 끝나면 끝없는 무력감과 우울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고 10년이 되지 않아, 할머니는 치매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엄마는 할머니와 자주 통화를 했다. 오늘은 할머니 기분이 좋으시네. 오늘은 안 좋으시네. 할 때 나는 늘 이유를 물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이유 같은 건 모르겠다. 할머니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말을 했었다. 아마 할머니에겐 할머니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말할 수 없었을 것이고, 말하지 않았기에 자식들도 그 마음을 몰랐을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여성들이 자신의 타고난 욕구와 성향을 모른 채 살아가느라 자주 아프다. 할머니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끼가 남달랐다고 한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노는 걸 좋아하고, 멋 부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자아도 강했을 것이고, 남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뽐내고 싶어 하셨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여러 식솔을 거느린 장남의 아내가 되어 남편의 부모와 조부모까지 먹여 살리고 농사를 짓고 자식들을 키워낸다는 건 정말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겁 많고 변화를 불안해하는 나의 아버지가 그 모든 겁과 불안에서 오는 결핍을 음식으로 메꾸었던 것처럼 할머니도 자식들을 몰아세우고, 소비를 통해 자기를 꾸미고, 조금이라도 남들에게 자신이 그럴듯한 존재임을 보이는데 신경 씀으로써 자신의 자아가 화려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만들어내고, 또 화려함이 지나간 자리의 공허함을 채워내셨을 것이다. 그러다 자신의 유일한 명함 같은 존재였던 할아버지가 떠나고 나니 자신의 삶이 너무 보잘것 없이 느껴지셨을 것이다. 그렇게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오기 시작했고 방파제는 무너져 내리고 만 것이다.


나를 할머니와 비교한다면 닮은 점보다 차이점이 훨씬 많을 테지만 어쩌면 즐거움을 느끼는 감각과 에너지를 분출하고 싶어 하는 성향, 그 후 빠르게 소진되는 에너지와 우울감은 닮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느낌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에게 있어왔던 것임을. 아들러 이론의 초기기억을 회상하며 느꼈다. 나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은 5살 이전의 기억은 신나고 떠들썩한 모임이 끝나고 아무도 없는 안방을 혼자 바라보며, 고요한 공간 속에서 느낀 그 적막감과 공허함이었다. 어린 육체로 느낀 어딘가 침잠하는 듯한 기분이 조금 지쳐있는 몸에서 비롯된 것임을 서른이 되어서야 알아차렸다. 나는 자꾸만 중심으로 돌아와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너무나 쉽게 오르고, 쉽게 내려올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러니 나는 자주 혼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다. 혼자가 될 때의 외로움이 싫으면서도 그 외로움이 필요한 사람이고, 규칙적으로 글을 붙잡고서 한 챕터를 끝내야 하는 사람이면서도, 자꾸만 밖으로 나가 새로운 것을 만나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늙어 죽을 때까지 내 삶에 불문율은 언제나 떠나고, 돌아오는 것이다. 늘 어딘가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새들처럼. 나는 규칙적으로 명상을 하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걷는다. 감정의 파도를 즐겁게 타기 위해서. 그것이 쓰나미가 되어 나를 덮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마음의 방파제를 쌓기 위해서. 치매 증세로 자주 깜빡깜빡하는 할머니도 매일 늘 같은 시간에 같은 거리를 걷는다고 한다. 마음의 감각이 무뎌져도 규칙적인 생활이 가져다주는 편안함과 성취감을 느끼고 계신 것이다. 마당 의자에 앉아 멀어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할머니는 불편한 걸음으로 문 밖을 나섰다. 마을 한 바퀴를 돌고, 할머니는 돌아올 것이다. 내일, 다시 출발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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