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7: 세상의 모든 색
루나는 어느 날 꿈속에서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 서 있었다. 그 들판은 알록달록한 꽃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놀랍게도 꽃들은 각기 다른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꽃은 작고 하얀 별 같았고, 어떤 꽃은 어두운 밤하늘처럼 깊고 검은빛을 띠었다. 심지어 루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으로 빛나는 꽃들도 있었다.
“정말 아름답다…” 루나는 감탄하며 꽃들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가 발을 옮길 때마다 들리는 꽃들의 속삭임은 아름다움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파란 꽃이 최고야. 파란 꽃만 봐!”
“빨간 꽃이 제일 멋지지. 다른 건 왜 있는 거야?”
“하얀 꽃이 순수함의 상징이야. 이게 진짜 꽃이지!”
각기 다른 색의 꽃들은 서로를 무시하거나, 심지어 배척하기도 했다. 루나는 한숨을 쉬며 속으로 생각했다.
“모두 이렇게 예쁜데, 왜 서로를 인정하지 못할까?”
그때 한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가 꽃을 뽑으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커다란 가위를 들고, “이 들판은 너무 혼란스러워. 내 눈에는 빨간 꽃만 있어야 해. 그래야 아름답지!”라며 다른 색의 꽃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루나는 급히 다가가 그를 막았다. “왜 그러는 거죠? 모든 꽃들이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데!”
그는 가위를 멈추고 루나를 노려보았다. “넌 모르는구나. 이 세상은 질서가 필요해. 이렇게 섞여 있으면 사람들은 혼란스러울 거야. 빨간 꽃만 있으면 깔끔하고 아름다울 거라고!”
루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지만, 곧 손을 내밀어 말했다. “나를 따라와요. 보여줄 게 있어요.”
루나는 그를 들판 끝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언덕이 있었고, 언덕 위에서는 들판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가 언덕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각기 다른 색과 모양의 꽃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꽃들은 섞여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마치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담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보이세요?” 루나가 말했다. “여기에서 보면 모든 꽃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요. 만약 빨간 꽃만 남았다면, 이런 그림은 볼 수 없었을 거예요.”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난… 이건 몰랐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군요.”
루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세상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각기 다른 생각과 삶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들판 같은 곳이죠. 어떤 사람은 빨간 꽃처럼 열정적이고, 어떤 사람은 파란 꽃처럼 차분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당신이 상상조차 못 했던 색깔을 지니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는 가위를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다양하다는 거였군요.”
루나는 그의 옆에 앉아 들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모든 색을 이해할 순 없지만,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순 있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들이 만들어내는 큰 그림을 이해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는 조용히 들판을 바라보며 가만히 웃었다. 그리고 가위를 땅에 내려놓고, 조용히 들판을 떠났다.
루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세상은 이렇게 다양함으로 인해 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낸다고. 그리고 그 다양성을 존중하는 순간, 우리 역시 그 그림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